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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Feb 13.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5

청진고등학교 교감 고주원의 후원으로 <고여사네> 아구찜 식당이 성황리에 개업을 마친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직은 추운 2월이긴 해도 미세먼지도 없고 햇살이 좋아서 산행하기에 적당한 날이었다. 청진일보 편집국은 단체 산행을 마치고 저녁에 <고여사네>에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지역 일간지 가운데 규모가 제법 큰 청진일보는 편집국 기자만 해도 열다섯 명이 된다. 공대 출신인 주성훈은 그의 또 다른 사업체에서 낸 막대한 수익으로 청진일보를 다른 지역 일간지의 스케일을 뛰어넘어 보란 듯이 이끌어가는 중이다.


그의 아버지 주민국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학원 사업에만 전념하고 안주하였다면, 주성훈은 유학파답게 글로벌한 배포가 있는 남자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나 외가 쪽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교육받고 자란 탓에, 아버지 주민국처럼 여색만 밝히지도 않고 오히려 알렉산더 대왕처럼 인문과 예술을 더 흠모하는 성향을 발전시키는데 주력했다.


주성훈의 외삼촌이 창간했던 신문사가 폐간의 위기에 몰리자 주성훈은 누구의 권유도 없이 자발적으로 신문사를 인수하여 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주성훈은 장차 이 지역에서 과학과 인문과 예술을 총망라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될 야망가이기도 하면서, 단 한 번도 대통령을 배출한 적이 없는 이 도시의 온건적인 태도에 의구심마저 품고 있는 급진주의자이기도 하다.  


주성훈은 편집국 산행에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지역 경제인연합회에서 주관하는 포럼에 참석했다가 저녁에 회식에만 참석할 예정이다. 주성훈이 나타나는 곳이면 나이가 지긋하거나 어리거나 상관없이 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성훈에게 쏠리는 것이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기에, 이제 주성훈은 여자들의 시선 따위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도 같았다. 장차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자리가 어디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으므로, 가급적이면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고 신변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다.


뉴욕에서 공부하며 생활할 때도 여성들의 끊임없는 구애에 몇 번 연애의 경험은 있지만, 결혼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효율적인 집안의 여자를 선택해서 현재 두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너무 많이 가진 남자에게 진정한 사랑의 기회는 드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성훈은 매우 이른 나이에 터득했던 것 같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가끔은 부러울 때가 있는 것은, 주성훈이 아직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은정은 토요일 오전에 노인전문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오십 대 에 위암 수술을 받고 십 년 정도 회복하고 완치된 줄 알았지만, 지금은 폐로 전이가 되어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다. 은정이 대학 3학년 때 산재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몇 년 간 아버지의 회사와 투쟁을 하던 엄마는 끝내 위암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은정은 대학 때부터 안 해본 알바가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국 어머니의 병 앞에서 꿈도 사랑도 다 무너져버렸다. 은정보다 세 살 위였던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검찰청 공무원과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갔다. 그때 언니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던 아버지의 믿음직스럽고 자상한 모습을 은정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엄마,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을까?"


"은정아,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좋은 사람인 거야.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매 순간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사람인 게 아니야. 니가 좋아하니까, 그 사람이 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은정의 어머니는 병원 침상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여전히 인생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상대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을 하던 엄마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그 모진 시간을 혼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이은정은 엄마가 얼마나 극진하게 아버지를 사랑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은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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