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일기를 쓰시던데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와 통화를 했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운전하며 내뱉은 그의 말이 선명하게 가슴에 꽂혔다. 이미 나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브런치에 일기를 쓰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와 마주 앉아 그와 나누는 새해 첫 술잔을 기울였다.
"어디 해외라도 나가서 한 육 개월쯤 살다와야 할까?"
요즘엔 정말 그런 생각마저 들고 있던 참이었다. 부다페스트라는 지명이 제목으로 올라오고 암스테르담이 어떻고 하는 책 제목들이 즐비한 시점에, 허구한 날 남편 흉이나 보고 자식 놈들 얘기나 하는 늙은 아줌마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고 읽고 싶어 하겠는가. 나도 외국에서 한 6개월쯤 살면서 브런치에 글을 실는다면, 그건 꽤 읽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었다.
"안 되겠다, 작은 애 4학년이라 취직 준비해야 되고, 큰 애 응급실 근무하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해야 하고. 그때까진 집에서 밥을 더 해야겠어."
그러다간 평생 집을 못 벗어날 거라는 그의 말이 경고인지 위로인지 아리송한 경계에서 흐릿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홉 시에 문을 닫는 코로나 지침 덕분에 일찍 식당 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화장실 문 걸어 잠그고 결국 오바이트를 했다. 잠결에 머리도 아프고 다음 날 숙취로 거진 산 송장처럼 집안을 비실거리며 다녔다.
마트 장보기의 꿀팁이라며 공산품 종류는 온라인에서 금액할인쿠폰을 적용시켜 주문하고, 오프라인에선 날짜가 임박해오는 신선제품 할인된 것을 사 오는 방법 등에 관해서 술자리에서 그에게 공연히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며칠 전 전지분유 대신에 아기 분유를 잘못 주문했던 어마어마한 실수에 대해선 절대 누설하지 못했다. 나의 치명적인 실수까지 다 거론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며칠 전 작은 아들이 남편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수영장 자판기 우유 얘기하는 걸 듣고 분유를 주문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마트 검색란에 분유라고 치니까 몇 개 회사 제품들이 주르륵 뜨는데, 그중 할인율이 좋은 제품이 잔고가 3개 남았다는 긴급한 문구가 올라오는 걸 보고 쫓기는 마음에 클릭했던 것이 바로 내가 산 아기분유였다. 집에 돌아온 작은 아들 앞에 아기 분유를 탁 내밀며 자랑을 했더니,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녀석이 말했다.
"엄마, 이건 아기 분유잖아요. 제가 말한 건 이게 아닐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나도 전지분유를 먹고 자랐었다. 수십 년 동안 잊고 지냈던 전지분유라는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래도 이거 아기 분유 마지막 4단계야. 걔들도 그만큼 자랐으면 뼈가 여물어서 입맛도 우리랑 비슷할 거야."
그래서 그날 이후로 작은 아들과 나는 아기 분유를 꿀에 타서 먹고 있다. 숙취에 울렁거리는 빈 속을 채우려고, 그날도 비실거리며 뜨거운 물에 아기 분유를 두 스푼 넣고 꿀에 타서 먹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시시한 일기를 브런치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