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하시겠습니까?

by 도라지

마누라가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줄 모르는 남편은, 읽어주는 독자 수도 적고 구독자 수도 좀처럼 늘지 않아서 글 쓰는 일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는 마누라의 속사정은 모르는 채, 마누라가 매일 집에서 밥이나 하고 책이나 읽다 보니 일종의 우울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나 보다.


한동안은 골프 좀 다시 배우라고 들볶더니만, 며칠 전부터는 어디 봉사활동이라도 나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온다. 그 남자 마누라는 골프처럼 돈 쓰는 일보다, 돈이 안 들기도 하고 돈이 안 되기도 하는 일에 더 현혹되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 남자의 집순이 마누라가 생각을 해보았다. 몸을 써서 봉사하는 일은 봉사할 때는 의미가 있으나 이제 나이가 있어서 자칫 관절이 상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피하는 게 국가의 국민연금 정책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얌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발음이 어눌한 철수씨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후보 네 사람이 모두 동의한 것으로 본다는 문장을 매우 진지한 어조로 매듭 지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국민연금 개혁은 정부가 필히 수행해야 하는 과제라면 나의 봉사활동은 내가 필히 수행해야 하는 일이므로, 나는 무엇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가 보았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역시나 배운 기술 써먹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들은 갖고 있지 않은 조금 별스런 자격증들이 몇 개 있지만, 기술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운전면허 뿐이다. 가진 기술은 없지만 사람들과 함께 펼칠 수 있는 걸 억지로 찾아본다면, 딱 하나 노르딕워킹 기술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몇 해 전 동네 보건소에서 노르딕워킹 강사 양성을 목표로 교육을 시킨 적이 있었다. 교육비는 보건소에서 지불했으나 노르딕워킹 사단법인이 발행하는 최종 자격증은 개인 부담이라서, 당시 교육생 아줌마들은 모두 강의만 잘 듣고 자격증 취득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보건소 측에선 양성과정에 들인 돈이 아까웠는지, 우리를 아니 나를 강사로 세워서 주민들의 건강을 도모하는 데 이바지하게 했었다.


무자격증 강사가 주민들 모시고 일 년을 재밌게 떼거리로 함께 다니며 동네 공원길을 걸었다. 무자격증 강사의 실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팀원들은 모두들 강사 수준에 버금가게 정확한 자세로 멋지게 스틱을 잡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폭도 아닌데 조직으로 움직이는 맛을 느꼈던 한 해였다. 노르딕워킹 세계대회라도 있으면 출전하고 싶다고 할 만큼 우리 팀원 아줌마들의 사기는 충천했었다. 일 년 후 내가 다시 철학대학원으로 돌아가 공부에 전념하면서 우리 팀은 해체되었고, 보건소는 무자격증 강사 대신에 보건소 공무원을 잽싸게 투입시켰다.


몇 해동안 신발장 안 수납칸에 세워 놓았던 노르딕 워킹 스틱을 오늘 다시 꺼내보았다.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도 아닌데 스틱 장비를 만져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스틱 잡고 걷는 게 뭘 어렵다고 배우느냐 하겠지만, 골프가 공만 맞히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노르딕 워킹에도 나름대로의 과학적인 원리에 근거해서 계산된 올바른 자세라는 게 있다고 한다.


오늘 입춘이란다. 새 봄이 시작되면, 내 건강도 챙기고 사람들에게 건강도 선물해줄 수 있는 노르딕 워킹 봉사활동을 시작해볼 계획이다. 우리 나이에는 언제까지나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을 하기가 어렵다.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들도 오늘 우리처럼 어제는 걸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오늘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걸어서, 미래에 걸을 수 있는 시간들을 조금씩 늘려나야겠다. 독자수 늘리는 것보다 내 걸음의 시간을 늘려놓는 것이 더 시급한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 걷지 않고 글만 쓴다면, 나의 미래에는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이 허락되지 않을 수도 다.


반납일을 넘긴 책들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나오는데 하늘에서 눈이 날리고 있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충만한 감정이 내 가슴속에서도 하얗게 둥실둥실 날아올랐다. 하얀 눈이 내리는 도심의 거리를 무자격증 워킹 강사 아줌마가 노르딕 워킹의 손동작을 흉내내며 반듯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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