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망의 조건

by 도라지

남편은 집에서 나를 '할망'으로 취급하며 가끔은 '할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 나이 스물두 살이던 시절부터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으니, 그 시절에 비하면야 나는 꼼짝없이 할망이 맞다.


남편이 없을 때는 쌀 20킬로도 카트에 옮겨 차에 싣고도 다니지만, 남편이 있을 때는 생수 2리터짜리 6입 1팩도 들지 않는다. 내가 쎈 척하며 힘자랑해봐야 나만 더 고달파지기 때문이다.


무거운 걸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편이 나를 할망 취급하는 건 아니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거나 활동량이 줄어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늙어버린 외양 탓일 것이다. 순식간에 늙는 법은 없으니, 나는 차근차근 늙음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틀 전부터 서울 갈 일이 있는데 언제 다녀올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대학생 작은 아들이, 오늘 서울엘 다녀오겠다고 오전에 내게 통보를 한다. 청주에서 유성에 있는 대학으로 자가운전을 해서 통학하는 아들은,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운전해서 가겠다고 어젯밤까지만 해도 고집을 부렸었다.


공연히 기름값이 아까워진 나는 오늘 서울에 다녀오겠다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핑계 김에 나도 그 차를 타고 올라가서 서울 구경이나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들이 강남역으로 간다고 하기에 서울 구경 갈 생각에 신이 난 엄마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과 강남역의 이동 거리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들이 식탁에 앉아 휴대폰으로 고속버스 예매를 하고 있다.


"운전해서 가는 거 아니니?"

"엄마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고속버스 타고 가려고요."


녀석의 마음이 하룻밤 새 바뀐 줄도 모르고 나 혼자 네이버 길찾기를 들여다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구태여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청주에서도 얼마든지 작품 관람의 욕구를 해소할 수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섰고, 청주시립미술관도 규모는 크지 않아도 썩 내실 있게 설계되어 있다. 도심의 곳곳에는 내로라하는 부자나 대학교수 출신의 관장이 아니어도, 민초들이 운영하는 작은 미술관들도 더러 생겨나고 있다.


그래도 서울에는 청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서울만의 고유한 빛깔과 냄새가 있다. 게다가 서울은 그 도시만이 두르고 있는 거대하고 투명한 얇은 막 같은 것을 휘감고 있다. 서울을 커다랗게 한 바퀴 휘돌아 덮고 있는 그 막은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인데, 그 막을 뚫고 침투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아릿한 전율 같은 것을 나는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유서 깊은 도시가 본능적으로 뿜어내는 고유한 방어의 기운 같은 것이기도 하고, 우람한 산자락과 아름다운 강줄기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도시 속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혼과 기백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서울의 정취를 떠올리며 고속터미널에 작은아들을 내려주고 근처 마트로 갔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양배추 하나를 두 손으로 간신히 움켜쥐며 카트에 담고 있었다. 할머니가 저쪽으로 카트를 밀며 떠나간 자리에 내가 들어서서, 양손에 하나씩 양배추를 들고 무게를 재어본다.


날짜가 임박해오는 신선식품류 할인 상품들을 몇 개 카트에 담고, 무는 눈대중으로 제일 큰 놈으로 골라 담고 보니 장바구니 네 개에 물건들이 가득 찼다. 양손으로 장바구니 두 개씩 번쩍 들고 집에 돌아와서, 민첩하게 연근을 조리고 마늘을 작은 절구에 넣고 찧었다.


사장이 사무실에 멀뚱멀뚱 앉아있으면 싫어한다고 언제나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베트남 갈 물건과 일본에 갈 물건이 서로 바뀌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풀이 죽어 집에 돌아왔다.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이제는 서울의 어느 거리를 걷지 않아도 하나도 궁금할 것이 없는 서울 구경 못 간 아줌마는 다시 할망이 되어 굼실거리며 저녁상을 차린다.










이전 01화휴대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