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환자수와 근로자

by 도라지

나이트 근무를 하고 온 간호사 큰아들이 아침 7시 40분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첫 직장인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3교대 근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워낙 살집이 없던 아들의 마른 몸에서 2킬로그램이 빠져나갔다. 어릴 적에, 밤마다 몰래 부엌에 숨어 들어와서 먹을 거를 빼내가던 쥐 생각이 났다. 아들의 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2킬로그램은 어느 쥐가 훔쳐간 것일까..


2킬로그램이 못내 아쉬운 엄마는 새벽마다 부산을 떨며 갓 지은 밥에 뜨끈한 국을 새로 끓여대지만, 누군가 야금야금 베어 먹은 열매에 새 살이 붙지 않는 것처럼 아들의 몸에는 살이 잘 붙지 않는다

"지난밤에도 환자 많았니?"


"스무 명을 봤어요. 노인분들이 많아서 옷 갈아입히고 주사 놔서 수액줄 꽂고 엑스레이 찍는 데로 모셔가고, 그걸 스무 번 한 거예요. 30분에 한 명 꼴로 환자를 본 거죠. 노인분들 똥오줌 닦아드려야 하고, 쉴 틈이 없었어요."


저녁 9시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총 10시간의 근무 시간 동안, 30분마다 한 명의 환자를 시중드는 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제저녁 출근길에 간호사복 가방 안에 삶은 계란을 넣어 보냈는데, 바쁜 와중에도 다른 선생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했다.


아들은 병원에서 제공받은 두 개의 간호사복을 매일 번갈아가며 세탁해서 입는다. 가끔 환자들의 분비물이나 의료 액체가 옷에 묻어오기도 한다. 아직은 무보수로 엄마가 아들의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주고 있어서, 매일 깔끔하게 세탁된 근무복을 가방 안에 넣어주면 아들은 초등학생처럼 그 가방을 들고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런 나를 보고 성인 아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 놀고 있는 엄마가 있는데 20명의 환자를 돌보고 온 아들에게 다른 일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가 하던 일을 고스란히 미래의 와이프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냐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나, 그것 역시 닥쳐봐야 알 일이다. 엄마 그늘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남자도 와이프 옆에선 손가락 열 개가 모자랄 정도로 부지런 떠는 집도 본 적이 있다.


응급실에 오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아들은 외할머니를 떠올리곤 한다고 했다. 비교적 아픈 데 없이 거동하시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건강하고 멋있는 노인으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에, 골다공증과 류머티즘 등을 앓고 계신 데다 디스크 수술을 두 번 받은 적이 있는 외할머니의 수척하게 굽은 몸이 자주 넘어지고 부러지는 것을 아들은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녀석은 어릴 적부터 수컷들이 가지고 있는 공격성 같은 것이 없었다. 물론 제 아우와 컴퓨터 게임을 더하려고 다투기도 하고 동생을 때린 적도 있긴 하지만, 또래 남자애들이 갖고 있는 공격성에선 하위권 수준이었다. 그것을 걱정했던 남편과 달리, 남성과 여성의 본성에 있어서 구분을 갖지 않았던 나는 큰아들이 다른 친구에게 설령 맞고 들어왔다 해도 크게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남과 경쟁해서 이기려는 욕심도 적고, 싸움을 잘하는 강한 놈이 되겠다는 수컷의 본능도 없고, 큰아들은 오히려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데 더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아이들 어릴 적에 우리 집 형편이 좋지 않아서 아들은 피아노 학원도 고작 일 년을 다닌 게 전부였지만, 고등학생 때는 학급별 장기자랑대회의 피아노 반주자였고 지금도 독학으로 배운 기타를 제법 연주한다.


그런 섬세하고 따뜻한 성향 때문에 아들은 간호사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감사해한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우리나라 간호사 업무량은 전 세계 1위 수준에 버금갈 것이라는 점이 딱 하나 애로사항이라고 한다.


노조가 구성되어 있는 국립대 병원들의 상황은 그나마 조금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노조가 없는 일반 사립 종합병원의 간호사 근무표는 더블 근무마저 가끔 있다. 새벽 6시 20분에 출근해서 밤 열 시에 퇴근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것은 엄연히 인권 유린에 가까운 가혹한 행정이 분명한데도, 노조가 없는 일반 종합 병원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병원에서 근무한 경험도 없고 의료 시스템을 잘 몰랐을 때는 간호사들의 고충에 관심조차 가지지 못했다가, 정작 내 자식이 간호사가 되고 보니 그들의 고충과 의료 시스템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와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개혁해야 할 문제들이 어디 간호사가 1인당 담당하는 환자수 제한의 법제화뿐이겠는가. 아이파크 건설 현장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근로자들이 갇혀 있는데, 나는 내 자식이 어제 받은 환자 수 스무 명에 분개하며 의료 시스템의 개혁을 끄적거리고 있다.


광주 붕괴 현장을 기록하는 언론들은 실종된 그들을 '근로자'가 아닌 '작업자'라고 칭하며 기사를 써 내려갔다. 실종된 사람들이 외주 업체의 일용직 혹은 계약직 노동자 신분임을 밝히기 위해 '작업자'라는 호칭으로 어휘 표기를 의도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생사에 대한 기록에서조차도 그들의 신분은 단지 일용직으로 구분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들면서 기분이 착잡해진다.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과 "근로기준법" 사이에 근로자에 대한 정의가 다르게 명시되어 있다. 이 두 개의 법률 사이에 근로자에 대한 법적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이냐와 현재 실직의 상태에 있는 근로자도 근로자로 볼 것이냐의 해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에 대한 법률적 해석의 판단 여부와 상관없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광주 아이파크 붕괴 현장에서 실종된 그들은 모두 엄밀한 의미에서 근로자라는 사실이다.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실관계를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로자로 표기되지도 못하고 작업자로 분류되어 표기된 실종자들의 생사와 가족들의 찢어지는 천고의 고통을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의 추진을 강력히 희망하는 나의 이기적인 문제의식은 과연 정의로움에서 출발한 것인지, 그조차 헷갈리는 일요일 오전이다.


이전 02화할망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