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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01.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10

산성을 한 바퀴 돌고 청진 빌딩 사람들이 산성에 있는 한 식당에 둘러앉았다. 박태성이 상인 연합회 회장의 체면을 내세워 인사말을 가볍게 하고, 주성훈이 청진빌딩의 후계자라는 불편함도 잊은 채 모두들 동동주 잔을 부딪히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주성훈을 처음 보았던 1층 고주연이 성훈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잖아요, 부자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요?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부자들이 더 치열하게 다투고 사는 거 같아서요."


고주연은 나이랑 관계없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거르지 않고 입 밖으로 뱉어버리는 유형의 여자다. 젊어선 예쁜 미모 덕분에 그런 성격마저 남자들에게 솔직한 매력으로 통했던 시절도 있었다.


"저를 부자라고 생각하시고 주신 질문이겠죠? 하하, 남들은 모르겠고, 저는 이제껏 일하는 재미로 살았던 거 같습니다."


유쾌하고 매너 있게 던지는 성훈의 대답은 진심이었지만, 맞은편에서 듣고 있던 6층 신재희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끼어들었다.


"남자들이 과연 일하는 재미로만 살까요? 다른 재미로 사는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을 걸요."


주성훈은 아버지 주민국의 여자가 그 앞에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면서 우습기도 하였지만, 신재희를 향한 적의 같은 건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없는 유대감 같은 것마저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재희와 주민국의 관계를 알고 있는 1층 강서준이, 공연히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대화 속으로 침투한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일하는 재미로 사는데, 부자들도 별반 다를 게 없군요."


강서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층 진현주가 서준의 말을 낚아채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선생처럼 점잖게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일하며 느끼는 재미랑 부자들이 일하는 데서 얻는 재미랑은 결이 완전 다른 거예요. 우리는 일을 해야지만 먹고살 수 있는 거고, 부자는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거든요.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집 장만하는 재미는, 어떤 때는 재미가 아니라 고달프기도 하잖아요. 안 그래요?"


"진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도 같네요. 우리들은 일하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부자들은 인생을 즐기기 위해 건강을 신경 쓸 테니까요."


자기가 쏟아낸 말에 본인도 씁쓸하다는 듯이 강서준이 동동주 한 사발을 벌컥 들이켰다. 주성훈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박태성이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대화의 구도에 문제가 있음을 직시하고 대화를 이어받았다.


"부자든 아니든 사람은 다 똑같아요. 일하는 재미가 단지 돈만 벌기 위한 건 아니잖습니까? 하하, 주 대표님이 우리보다 백배는 더 골치 아프게 고민하고 살 지도 몰라요."


태성이 동동주 대신 물이 담긴 사발을 들며 건배를 외치자, 모두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각자의 손에 들려있는 동동주를 마셨다. 부자라고 양손에 두 개의 잔을 들고 한꺼번에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현주가 남동생 진현기 변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슬며시 풀어놓기 시작했다.


"가정 있는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사고 치는 건 공직 사회라고 예외는 아닌가 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잘릴 염려도 없다지만, 공무원이 그러면 그건 좀 힘든 거 아닐까요? 여자들이 더 무섭다니까요. 바람피운 남편의 내연녀를 상간녀 위자료 소송으로 고소해서 한몫 챙기고, 남편한텐 위자료까지 받은 뒤에 이혼해서 새 남자 만나는 여자들도 꽤 있나 봐요."


진현주가 재미로 던진 이야기에 고주연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귀가 벌게져갔다. 대전에서 7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건물 주인이었던 동창생과 잠자리를 줄곧 이어왔던 주연은, 동창생의 마누라가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걸렸으면 큰돈 날릴 뻔했구나 싶은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그녀를 덮쳐오고 있었다.


"상간녀로 고소당해도 위자료 3천만원이예요. 한탕 크게 할 여자들이 그깟 3천만원이 대수겠어요?"


6층 신재희의 발언에 사람들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주민국의 아내이며 주성훈의 어머니는 몇 해 전 명을 달리했다. 신재희가 비록 주민국의 숨겨진 여자지만, 신재희는 현재 상간녀 입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주민국은 칠십 대의 홀아비며 여전히 여자를 밝히고는 있으나, 신재희에게 40평형 고급 아파트도 주었고 평생 쓰기엔 좀 부족하게 여겨지는 얼마의 돈도 입금해주었다. 주성훈이 청진빌딩에서 자기를 내쳐도 그다지 서운할 것도 없는 입장이다.


조용히 앉아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은정이 입술에 가져갔던 동동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을 때, 마주 앉아 있던 주성훈의 눈과 부딪혔다. 그래, 저 남자는 부자다. 그리고 내가 저 남자와 엮인다면  내가 곧 상간녀가 되겠지, 그런 부질없고 허황된 생각을 하며 은정은 성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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