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같은 인생

by 도라지

검찰청 마당에 듬성듬성 우뚝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새 한 마리가 참 이쁘게도 지저귀었다. 마당이라고 해보았자 콘크리트 건물과 바닥이 마치 제 영역을 선심 쓰며 나누어 주는 것처럼 한쪽 옆으로 작게 조성된 정원의 흙들에 불과하지만,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은 제법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두 시의 검찰청 마당에는, 얼마 되지 않은 흙의 영토에서 보란 듯이 이름표를 달고 서있는 키가 큰 나무들 위로 봄이 오는 계절을 찬미하며 경쾌하게 지저귀는 새들이 날아왔다. 검찰청과 인접해 있는 작은 생태 공원에서 놀던 새들이 검찰청 마당까지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바로 뒤에 산이 붙어 있어서, 나는 매일 흙을 밟고 새소리를 들으며 산다. 숲 속에는 겨우내 얼어 있던 땅들이 녹으며 아직도 군데군데 누군가 오줌이라도 지리고 간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는 땅들도 있지만,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선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흙들이 말라 있었다. 겨울 강수량이 적었던 탓이라고 남편이 말해주었다.


지난겨울 강수량이 반세기 만에 가장 적었다는 소식은 산불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예측을 불러오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방화에서 시작되었다는 동해안 산불은 국민 모두의 근심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너의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몇 번은 흙을 밟고 산에 오르며 매번 새소리를 듣고 살지만,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오늘따라 유달리 애절하게 곱기도 하였다.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검찰청 옆에 있는 법원으로 향했다.


오늘 모니터링해야 하는 재판은 존속 살해 미수 사건이었다. 법정에는 이미 노트북을 펼쳐놓은 기자들이 몇 명 앉아 있었고, 접이식 책상 하나가 남은 자리에 나는 종이와 펜을 들고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자들이 키보드를 두드릴 때, 늙은 아줌마는 암호같은 글씨체로 종이에 재빠르게 재판 내용을 적어나갔다.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 작은 키의 여인이 탈색된 짧은 머리를 하고 누런색의 수감복을 입은 채로 피고인석에 섰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시텔에 주민등록지를 두고 사는 무직의 여인은 그녀를 피하는 엄마와 대화를 하기 위해 엄마를 찾아갔다가, 거기에 있던 칼을 잡고 휘둘러서 엄마에게 큰 상해를 입혔다.


그녀의 변호사와 약간 떨어진 옆에서 '살인의 의도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므로 살인 미수죄는 인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빠르고 간결했다. 재판장이 피고의 변호사와 다음 재판 기일을 협의하고, 그녀는 세 명의 여성 교도관과 함께 법정 옆에 딸린 문으로 주눅 들지 않고 사라졌다.


법정을 나와 법원 마당을 따라서 다시 검찰청으로 향하는데, 아직도 귀여운 새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방금 전 의도가 없었으므로 살인 미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어딘가 저 작은 새들의 목소리와 닮은 것 같기도 하였다. 엄마를 몇 차례 칼로 찌른 여자 죄수는, 거칠고 포악한 짐승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고 귀여운 새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재판에 모니터링을 다녀올 때마다, 나는 매번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곤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보균자일지도 모른다. 면역력이 높고 도덕적 항체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 된 품위를 지켜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너무 손쉽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새의 목소리를 갖고 있던 피고 여인의 탈색된 며리카락이 어디선가 본 듯한 새와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 거실 소파에 앉을 때였다. 발밑에 무언가 뾰족한 게 밟혀서 집어 들어보니, 어제저녁 남편이 깎은 발톱이었다. 그러려니 하며 소파 테이블 밑을 다시 손으로 훑어보았다. 안 나오면 내가 서운할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발톱 하나가 손바닥에 쓸려 잡혔다.


인생에 많은 것들은 발톱 같은 거다. 내 몸에 있을 때는 당연히 붙어있어야 하는 것인데, 깎아서 떨어뜨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지는 것이 되어버린다. 사랑도 그렇고 욕망도 그러하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처럼, 다 큰 자식은 이제 내 편도 아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자라서 깎아 버려야 하는 발톱처럼, 우리 인생에도 때마다 깎아 버려야만 하는 것들이 참 많기도 하다.


인생이 발톱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내일 날이 밝으면 경쾌한 새소리를 들으러 산에 또 올라가고 싶어질 것이다. 흙과 나무에서 나는 냄새가 봄이 오면서 다시금 싱그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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