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sync)하며 산다는 것

by 도라지

하늘에서 간간이 눈이 날리는 한파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정에는 없었지만 남편과 상당산성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왔다. 겨울철 눈 쌓인 산길을 걸을 때 스틱이 없으면, 이제 나는 아예 산에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남편 차에 상비해두고 있는 스틱 한쌍은 내가 잡고,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먼지 흡입기 옆쪽에 두고 간 나무 막대기 두 개를 집어서 남편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꼭 지팡이를 짚어야 돼, 노인네처럼?"


반문하는 남편에게, 빙판길에서 발휘되는 4륜 구동의 탁월한 기능을 짧게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 나이에는 백번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엔 미처 녹지 않은 눈들이 운동화 아래에서 뽀드득 소리를 내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쌓였던 눈들은 벌써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공기 중에 말라버려서 흔적조차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갈색의 솔가지들이 나뒹구는 눈 속에는 잘 보이진 않지만 단단한 얼음이 숨어있는 빙판길도 있었다.


남편은 나무 지팡이 두 개를 양손에 짚고 거침없이 산길을 올라가고 내려가며 속도를 냈다. 마누라가 대부분 남편 뒤에 가기도 하고 가끔은 남편 앞에 서기도 하며 부부가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을 넘게 걷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추운 날 빠른 속도로 등산한 탓인지 몸이 노곤해진 두 사람은 집에 돌아와서, 한 사람은 거실에서 또 한 사람은 방에서 따로따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누웠다. EBS 방송국에서 송출한 <한국의 둘레길>이란 프로그램에서, 뇌과학자 장동선과 작가 태원준이 서해랑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동선이 강연호 시인의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구절을 소개하는데,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인생길 위에서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들지 못하고, 영영 잘못된 길로 끝나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잘못된 길처럼 여겨진다 해도, 그조차 우리 인생의 새로운 지도로 수긍해줘야 하는 걸까? TV를 보면서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뇌과학자에게 그걸 묻고 싶어졌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뇌과학자가 말했다. 우리의 뇌는 이미 가지고 있고 감사해야 하는 것들에 주목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갈증하고 따라가는 데 우리는 그것을 '욕망'이라고 부른단다.


하지만 '결혼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선 잘못 든 길'에 대한 통찰에서는 욕망의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욱 심층적이며 복합적인 시선들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잘못 든 길이, 단순히 잘못 들었지만 거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길이라거나,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나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

(강연호의 시집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에서 언급된 내용들이다)처럼 용기 있는 결단에서 비롯된 새로운 역사의 기록이라면 차라리 해석이 쉬워진다.


하지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결혼과 이혼만큼 어려운 문제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적 파산 등의 문제도 위협적이지만,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문제들이 너무 많이 수반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선뜻 이혼이라는 손쉬운 카드를 내밀지 못하고 때로는 위태로운 동거를 유지하며 살기도 한다.


길을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뇌과학자는 '도반'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고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발을 맞춰 길을 걸어가다 보면 심장의 박동수마저 같아지고, 두 개의 정신과 두 개의 신체가 싱크(sync)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싱크(sync)"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보폭을 맞추고 서로에게 "싱크"의 안도감을 주며 걸어갈 수 있는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신히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비좁고 가파른 산길이 더 많은 게 결혼생활이다.


인생이라는 고단한 길을 한평생 함께 걸어갈 '도반' 같은 배우자를 만나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존재와 싱크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을 것인데, 결국 나의 결혼은 남편과 싱크하지 못하는 채로 늘 삐걱거리며 다투고 산다.


겨울철에 피부관리가 더 필요하다며 남편은 얼굴에 팩을 붙이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요가 매트에 누워 뒹굴거리던 마누라는 자세를 잡다가 몰래 새어 나오는 방귀를 슬며시 뀌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요즘 비염 증세가 도진 남편이 방귀 냄새를 못 맡고 TV를 보며 껄껄거리는 소리가 안방까지 들린다. 마누라 손에 폼나게 등산 스틱 쥐어주고 자기 손엔 나무 막대기 들고 산에 올랐던 남편 앞에서 살그머니 방귀 뀌고 안방으로 내뺀 마누라는, '이 정도의 편안한 관계라면 이 집 부부도 나름대로는 싱크(sync)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라고 억지스러운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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