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 단지이든 입주민의 차량수에 비해 주차장에 주차칸이 모자란 사정은 비슷할 거 같다. 이 상황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면 더 여실히 드러나곤 하는데, 어젯밤 열 시에 퇴근한 아들의 차가 지하주차장의 벽면에 세워져 있으니 차를 옮겨달라고 관리사무소에서 아침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은 자고 있고, 내가 모자 하나 눌러쓰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아침에 출근해서 주차장의 비어있는 칸에 아들 차를 주차하는데, 차를 타고 이대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새해 밑 2021년 마지막 날에 거실 바닥으로 떨어졌던 남편의 휴대폰이, 다시금 나의 모험심과 도전심을 상기시킨 까닭이었다.
물론 밥은 계속하고, 일상은 똑같이 굴러간다. 어제는 남편 데리고 상당산성도 크게 한 바퀴 돌고 밖에서 식사도 하고, 남편의 헤어진 코트 주머니 수선 맡겼던 것도 백화점에서 찾고, 마트에 가서 구정 설날에 거래처에 돌릴 선물도 미리 주문해두었다.
그렇다고 내 안에서 다시 깨어난 저항심이 금세 사그라들었던 건 아니다. 일상은 평화롭게 수행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영하의 겨울 날씨만큼 차갑다.
다섯 해 전 여름에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다녀온 친구에게 자극받아서, 나도 다음 해쯤엔 혼자서 산티아고를 걸어보리라 다짐을 하고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었다. 영어 회화도 썩 뛰어난 수준은 못되지만, 어디 가서 항의하고 내 권리를 찾을 만큼의 생존 영어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래도 그 나라에 가면서 그 나라 언어는 조금 알고 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었다.
그때 매우 출중한 미모의 여자 강사 선생님이 너무 지나치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나라 언어를 몰라도 나는 어디에 가서든 능히 혼자서 살아낼 거 같다고 했다. 그래, 그런 비슷한 이야기는 고딩 때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사막에 떨어뜨려 놓아도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 같은 아이라고 했다.
보기엔 그다지 독한 구석도 없어 보이는 내게서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시들지 않는 생명력 같은 것을 읽는가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두려움을 더 적게 갖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는 남들보다 두세배 이상 두려움을 더 많이 갖는 타입이다. 다만 문제가 발생할 경우 뒤로 도망가거나 망연자실하여 주저앉는 타입이 아니며, 미리 문제로 발생될 소지가 있는 것들을 파악하여 문제를 줄여보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그런 은근한 기질이 내 속에 있어서 나는 내 인생에 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내 인생에선 산티아고만 순례길이 아니다. 내게는 인생의 구비구비가 온통 처절한 순례길이었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보지도 못한 채 몇 해가 또 바뀌었지만, 그동안 잠재워두었던 모험심과 도전심을 남편이 다시 일깨워 주었다.
강인한 생명력과는 또 무관하게, 나의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인생 앞에서 너무 무능했다. 인생을 깨우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깨우친 것들이 적합한 것인지, 그것조차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누구의 인생이든 맞고 그르고는 있을 수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선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들을 사랑해서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룩해놓은 질서를 사랑해서 현재의 삶을 유지해 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가끔 혼동하는 것에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변하는 상황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 누구의 인생에서나 고난은 있기 마련이다. 겉으로 화목한 부모 아래에서 풍족하게 자랐다해서 자녀의 인생이 계속 순조롭고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다 아는 척하면서 여전히 "내가 정해놓은 질서" 속에 살고 있는 나를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내 인생은 나 외에 아무도 소유할 수 없으니까, 나는 나의 때에 맞게 처신하며 또 다른 때가 올 것을 기다린다.
오늘은 내 인생의 새로운 여행을 떠날 날이 아니다. 주차장에서 올라와 순두부찌개에 밥 한 그릇 뚝딱 먹었다. 언제고 여행을 떠나려면 기운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