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로 남편 이야기를 할 때, 남편의 모습은 신중하고 사려 깊고 참을성 있고 인생의 의미를 아는 남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제껏 내 글에서 남편은 매우 즉흥적이고, 두루 조사하고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고, 한 번 꽂히면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단순한 기질을 가진 남자로 묘사되었다.
그런 기질 덕에 가끔 크게 실패도 했지만, 반면에 그런 기질 덕에 우리 네 식구 굶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기록한 바는 있었다.
그럼 만약에 남편이 내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게 묘사할까? 매사에 꼬치꼬치 따지고 들고 쪼잔하고 너무 아끼다 못해 누추하고, 반짝반짝하게 집안 청소도 하지 않고 삼시 세끼 밥만 주고 빨래만 하면 주부일은 얼추 다했다고 생각하는 게으름뱅이에, 사무실 일 얼마 되지도 않는 걸 매일 사무실 출근하는 경리 직원처럼 매끄럽게 처리도 못하고, 가장 큰 단점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제는 한물간 아줌마일 뿐일 것이다.
더 있다. 남편을 무시하고, 돈은 되지 않는 저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드는 아주 파렴치한 마누라다. 밖에 나가서는 세상 그렇게 유쾌하고 가끔 유머도 있으면서, 집에서는 근엄한 사감선생처럼 재수탱이다.
남편 가슴속에 쌓인 한이 어디 이것뿐이랴.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올 것이다. 아, 그래,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다. 나는 '언어폭력'을 쓰는 여자다. 욕은 한 마디도 없는데, 비수를 꽂듯이 남편과 큰아들을 찔러댄단다. 남편은 언어폭력이 더 큰 폭력이라며 나를 공격한다.
사실 변명이 아니고, 그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에 불과한 치사하고 궁핍한 공격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언어는 폭력'이라는 논리를 적용시킨다면 토론회에 나온 패널들, 비평가들은 다 언어 폭력자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기분이란 타인의 언어와 행동이 나에게 미쳐서 유발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타인이 나에게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묻는데,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기분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기분이란, 순전히 내 의식 체계 속에서 스스로 일으키는 감정과 생각의 연결고리 속에 갇혀 있다.
어제 섣달 그믐날에 남편의 휴대폰이 거실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내 안에 부정의한 폭력에 대한 저항심이 꿈틀대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도, '내가 너무했나? 그래도 남편인데~' 이런 후회 비슷한 감정들이 또 내 마음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빠의 저런 던지기쯤 으레 한 번씩 있는 일로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는 것 같은 아들들의 반응을 보며,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묘한 불안감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저것은 당연히 폭력인데, 엄마가 별다른 반응 없이 밥상을 차리고 일상을 수행하는 틈에서, 아들들이 행여나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게 두려워진 것이다.
아들들에게 학교 선생처럼 차분하게 "물건 집어던지기는 엄연히 폭력이다"라고 말하는데,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나는 분명히 재수탱이 아줌마가 맞을 거도 같았다.
오늘 새해 첫날 아침이다. 떡국을 끓이고, 오늘 하루 나는 남편을 또 눈감아주고 어디 산책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건지 그걸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