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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15.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14

와우산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청진빌딩은 도로 맞은편에 위치해있는 건물들보다 지대가 조금 높은 편이다. 6층 말루스의 창가로 들어오는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신재희가 세상 근심 없는 표정으로 태성을 바라보았다. 은정을 향한 태성의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신재희는 태성의 안색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 중이다.


박태성은 주성훈과 이은정이 함께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온통 신경이 쏠리고 있지만, 둘이서 어디 멀리 나간 것도 아니고 고작 청진 빌딩 6층으로 올라온 걸 보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심을 할 단계는 아니라고 안심해본다. 태성이 그동안 몇 번 마주한 주성훈은 난봉꾼 기질이 다분한 주민국과는 전혀 다른 심성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고, 성훈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 또한 빈틈없이 번듯했다.


박태성은 남자든 여자든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게 못된다는 것을 이은정과 주성훈을 보며 새삼 되뇌고 있다. 요일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모자랄 것 같은 특출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도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 자못 의아할 지경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은정을 바라보면서 저 여자에겐 어떤 남자가 어울릴까, 태성 자신과는 어울리는 그림인가, 태성은 이런 질문들을 해본 적이 있었다. 태성은 오늘 두 사람이 나란히 말루스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저 둘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구나, 자신도 모르게 감탄 어린 인정을 하고 말았다. 그런 생각은 태성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주성훈이 아내가 있는 남자만 아니라면, 결혼을 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남녀의 모습이라고 신재희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신재희는 요란한 목소리와 차림새와는 별개로 영특한 구석이 있는 여자다. 그녀를 여자로 바라보는 눈빛을 가진 남자와 그녀를 사람으로 바라보는 눈빛을 가진 남자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신재희는, 그런 능력 덕분에 주민국의 마음을 얻어 40평 아파트와 얼마의 비자금까지 얻어낸 능력자다.


남자가 가진 능력만 보고 달려드는 여자들은 마치 수컷 나비의 화려한 날개 빛깔에 현혹되어 날아오는 암컷 나비들과 비슷하지만, 남자는 동물의 세계와는 또 다르게 여자라고 다 여자로 보지는 않는다. 신재희가 아무리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해도, 신재희를 여자로 보지 않는 남자도 있었다. 그런 남자들에게선 대부분 정신적 교감과 성적 충동의 저울추 무게가 비슷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았다.


신재희는 박태성이 이은정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태성이 재희 자신을 여자로 본다는 것을 귀신처럼 눈치채고 태성과 가끔 잠자리를 한 적이 있다. 태성은 주민국의 사람이고 신재희는 주민국의 여자라는 것을 재희와 태성은 서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두 사람의 잠자리는 가볍고 편안할 수가 있었다.


서로에게 어떠한 책임도 의무도 주지 않는 심플한 관계에 대해, 두 사람은 입 밖으로 합의한 적도 없지만 무언 중에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재희는 칠십 대의 주민국과는 비교 불가한 남성을 지닌 박태성과의 잠자리가 매우 만족스럽지만, 과하게 욕심을 내어 자주 만나지는 않을 만큼 영특하게 자신을 조절할 줄 아는 여자다.


"저 두 사람 마치 연인 같지 않아요? 주성훈 대표 와이프는 어떤 여자예요? 관장님은 주대표 와이프 본 적 있나요?"


신재희의 속사포 같은 질문 세례를 받으며 태성의 시선이 재희에게로 돌아왔다.


"주대표 와이프도 미인이죠. 하지만 꾸에로 사장님만큼 매력적인지는 모르겠군요.."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노출시킨 태성이 말끝을 흐리며 공연히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기와 잠자리를 한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칭찬을 하게 될 경우 대부분의 여자는 질투심이 끓어올라 화를 내게 마련이지만, 남자를 두루 거쳐본 신재희는 그런 것쯤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다.


남녀 관계는 결국 실제적인 잠자리의 유무와 그 횟수와 비례할 뿐이라는 것을 신재희는 이미 깨우친 바 있다. 신재희는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했다던 나사렛 여자 마리아의 회임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잠자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사장님, 카페 이름은 누가 지은 건가요?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제가 지었어요. 구약성경에 금단의 과실로 등장하는 사과 있잖아요. 그게 라틴어로 '말룸'인데, 사과라는 말 외에 '악'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대요. 결국 성경에서 나타난 금단의 열매가 사과였기 때문에 동시에 '악'이라는 뜻도 함께 유래한 거겠죠? 사과나무는 '말루스'라고 발음한다는데, 동시에 '악한, 나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던가 봐요. 저는 나쁜 게 싫지가 않거든요. 제가 나쁜 여자라서 그럴까요?"  


자신을 가리켜 나쁜 여자라고 말하는 신재희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성모 마리아의 얼굴처럼 온화하고 맑게 느껴졌다. 박태성은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은정을 향한 마음과, 잠자리에서 그에게 모든 걸 주어버리는 신재희의 뜨거운 몸에 대한 애정이 늘 동시에 타오르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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