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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10.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13

온 세상이 앞다투어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꾸에로 공방 창가 쪽으로 은정이 화분 몇 개를 옮겨놓으며, 불현듯 여자가 꽃에 비유되고 남자를 벌과 나비에 비유하는 방식의 오류에 대해 생각해본다. 꽃과 나비는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두 개의 개체이며, 나비는 나비끼리 짝짓기를 한다. 나비는 꽃의 번식을 돕는 운반자 역할을 할 뿐인데, 왜 꽃과 나비를 마치 한 쌍인 것처럼 인식하는 비유가 시작되었을까 은정은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나이가 지긋한 직원들의 미싱 돌리는 소리가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노래와 함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주성훈이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서며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은정이 성훈이 서있는 문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우리 직원들에게 줄 선물을 주문하려는데요~ 미싱 소리 때문에 여기선 대화가 좀 어렵겠네요. 잠시 시간 되시면 차 한잔 하시겠어요? "


은정이 앞치마를 벗어서 한쪽 벽면에 걸어놓으며, 포트폴리오를 집어 들고 성훈을 따라 공방 문을 나섰다. 6층 말루스로 두 사람이 들어서는 모습을, 창가 테이블에서 한 남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신재희가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어머, 주성훈 대표님~ 자주 뵙네요~"


그러자 창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도 몸을 벌떡 일으키며 이 쪽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한복을 입고 있는 박태성이 주성훈을 향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성훈의 옆에 은정이 나란히 서있는 걸 보고 가볍게 고개로만 인사를 전했다.


성훈은 박태성과 멀리 떨어진 테이블로 은정을 앉히고는, 은정이 가지고 온 포트폴리오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어차피 은정의 매출을 올려주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지만, 성훈은 은정의 마음을 헤아려 매우 신중한 태도를 짐짓 취해 보이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성훈이 은정의 의견을 수렴하여 직원들에게 적합한 제품들을 주문하고 있을 때, 신재희가 두 개의 커피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와서 직접 서빙을 했다. 남자와 여자의 심리에 능숙하기도 하고 능청맞기도 한 신재희가, 두 개의 눈꼬리를 의뭉스럽게 말아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주대표님, 꾸에로 사장님한테 뭘 주문하시려나 봐요. 꾸에로 제품이 좋은가요? 나는 명품 아니면 잘 몰라서요~ 나중에 나도 꾸에로에서 뭐라도 하나 사봐야겠네요. 거긴 최고 비싼 게 얼마예요?"


신재희의 매너 없는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은정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기품 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신사장님 명품 가방의 십 분의 일 가격이면 저희 공방에서 최고 좋은 가방일 것 같은데요~ 신사장님은 저희 공방 제품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분이세요. 백화점 명품샵에 어울리는 분이죠."


은정의 돌려 까는 화법을 들으며, 주성훈은 은근히 은정의 내공이 신재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신재희가 다시 박태성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돌아가고, 성훈이 궁금하다는 듯이 은정에게 물었다.


"은정씨~ 아까는 공방 창가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고 있었나요?"


성훈이 자신의 뒷모습을 유별하게 바라보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은정의 얼굴이 잠시 발그레하게 붉어져갔다. 두꺼운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여자들은 그녀들의 속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질 않는다. 은정의 얼굴이 붉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성훈의 두 눈에 봄날처럼 화사한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나비는 나비끼리 짝짓기를 하잖아요. 나비는 꽃가루를 옮겨 꽃의 번식을 돕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인데, 왜 사람들은 꽃과 나비를 한 쌍으로 생각하게 됐을까 그게 궁금해서요."


"은정씨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요. 꽃에게 나비는 번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거로군요. 왠지 씁쓸해지는 걸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이 종족 번식을 위해 부단히 애쓰며 진화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은정씨 얘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남성들이 안쓰러워지네요."


"그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수컷 나비는 암컷 나비와 얼마든지 짝짓기를 하잖아요. 꽃에게선 가루를 운반해주고, 암컷 나비랑은 짝짓기를 하고요. 암컷 나비도 꽃가루를 나르는 건 마찬가진데, 이상하게 꽃을 찾는 나비 하면 수컷일 거 같은 시선이 너무 재밌지 않은가요?"


드물게 마더 테레사처럼 암컷 나비가 되기를 포기하고 인류의 번식을 위하여 꽃처럼 홀로 살아가는 여자들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는 수컷 나비와의 짝짓기를 갈망하는 암컷 나비들에 가깝다고 은정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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