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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Apr 10.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18

어느새 짙은 초록의 여름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청진빌딩에 세 들어 있는 사람들은 두 달마다 가는 산행을 그동안 번 더 다녀왔다. 주성훈은 산행에도, 청진빌딩 신문사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주성훈 아내에 대한 무성했던 소문들도 잦아들고 주성훈 일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강서준은 뜨거운 여름에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온종일 삼겹살의 불판처럼 뜨거운 팔월을 보내고, 강서준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9월의 어느 아침 해누리 식당으로 출근을 했다.


고여사네 고주연은 언제나 강서준보다 먼저 가게에 출근해있었다. 멀리서도 주인의 소리를 알아듣는 강아지처럼 강서준의 자전거가 해누리 앞에 멈추어 설 때쯤, 고주연은 고여사네 식당 문을 열고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 왔다. 그리고 미리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차갑게 담아와서 아침마다 서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두 사람의 일과가 되었다.


 "서준씨, 아직은 아이스커피가 낫겠죠?"


"아무렴요. 9월로 들어서긴 했어도 아직도 한낮엔 더운 걸요. 저는 구월 달엔 계속 아이스커피가 좋을 거 같아요. 매일 아침 주연씨께 맛있는 커피를 얻어마시고, 제가 운이 좋은 놈인가 봅니다. 하하하 ~"


"얻어 마신다니요, 서준씨가 어디서 얻어마시고 할 분이신가요? 서준씨 같이 멋있는 분이랑 단둘이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제가 더 고맙죠~"


지난겨울의 끝자락에서 청진빌딩 산행을 할 때 외부인이나 고객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로 한 것을 먼저 기억하고, 강서준 앞에서 슬그머니 '서준씨~'라고 이름을 부르며 실행에 옮긴 것은 고주연이었다. 주성훈 아내의 사망 소식 이후로 고주연의 인생관은 더욱 확고해졌다. 언제 갈지도 모르는 인생에서 가슴 설레는 일들을 만들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거룩한 수도자의 종신 서언처럼 더욱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았다.


펄펄 끓는 가마솥 같은 뙤약볕 속을 자전거로 출근할 때마다, 강서준은 고주연이 내주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생각하며 힘을 내서 페달을 밟았다. 두 번의 사업 실패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골 땅뙈기마저 다 날리고 서준은 삼겹살집을 운영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해누리를 찾는 고객들도 많아서 매출은 썩 괜찮았지만, 서준은 구태여 자동차 한 대를 더 구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으로 출근하는 아내에게 신형 제네시스를 선물할 때 서준은 비로소 아내 앞에서 면목이 서는 것도 같았다.


고마운 아내 앞에서 남편으로서의 면목은 면목이고, 서준은 봄과 여름을 지나며 고주연이 아침마다 건네주는 커피에 중독되어 다. 커피를 마시며 주연과 눈빛이 부딪힐 때마다, 주연의 가늘게 올라가는 눈꼬리가 나이에 맞지 않게 제법 섹시해 보이기까지 한다. 고달픈 식당 주인의 눈빛이 아니라 남자를 몹시도 갈구하는 여성의 색기 어린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강서준은 남몰래 고민되고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강서준이 아이스커피 한 잔에 담긴 주연의 마음과 욕정을 음미하고 있을 때, 고급 외제차 한 대가 위풍당당하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성훈 대표가 왔나 보네요. 신문사에 나타날 때가 지나긴 했지만..."


주성훈의 등장 예고에 고주연의 눈빛도 흥밋거리가 생긴 것처럼 색다른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 가진 남자가 혼자 살 리는 없고, 마누라 죽은 지도 벌써 오 개월이 됐으니 주대표에게도 만나는 여자가 있겠죠?"


"글쎄요, 워낙 철저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으니, 함부로 아무나 만날 사람은 아닐 거 같군요. 저런 류의 남자는 선택지에서 모 아니면 도 같은 극단적인 기질이 있거든요. 어중간하게 타협하거나 욕망에 휘둘려 자신을 팽개치거나 할 타입이 아녜요. 남자가 남자를 잘 아는 법이거든요."


서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주연은 왕족 같은 주성훈이 오히려 웬만한 중보다 더 부처 같은 남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강서준은 그런 부처 같은 남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인 눈빛으로 고주연은 강서준의 동그랗게 탄력 있는 엉덩이에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언제 봐도 매력 있고 탐스러운 엉덩이라고 생각하며, 주연은 강서준의 남성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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