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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y 28.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22

바닷바람을 가르며 조르바호의 흰색 돛이 가볍게 흔들거렸다. 주성훈이 뒤를 돌아다보지도 않고 푸른 바다의 정면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물론 결혼도 다시 할 거고, 이제 정치도 할 거야."


성훈의 돌발적인 발표에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은정이었다. 정치인 주성훈이라~ 은정이 성훈을 떠올릴 때, 정치인 주성훈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김찬우가 묵직한 몸매의 소유자 답지 않게 날랜 몸짓으로 어느샌가 주성훈의 조타석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었다.


"성훈이 드디어 결심했구나. 잘했어. 우리가 꿈꾸었던 세상 비슷하게라도 만들어보자~"


김찬우가 마치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으로 주성훈을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손정환은 의외로 아무 말도 선뜻 꺼내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도록 내버려 둔 채, 권진아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너희들이 꿈꾸는 세상? 잘 알지. 니들 고딩 때부터 셋이 붙어서 정의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쑥덕거리던 거 모를 줄 알았지? 그러면 한 가지 물어볼게.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니?"


은정이 권진아를 바라보는데, 권진아의 눈빛은 산호빛의 푸른 바다처럼 투명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수선스럽게 등장하던 진아의 첫인상 속에 뜨거운 열정과 귀여운 여성성만 있는 줄 알았더니, 냉철한 이성도 품고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진아의 질문에 김찬우가 다시 조타석 뒤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덕목이라? 나는 구태여 덕목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성품이나 기질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정치인은 무엇보다 윤리적 감각이 중요하겠지. 대한민국에서 논란의 중심에서 추락하지 않으려면, 윤리적 균형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겠어?"


윤리적 균형감을 거론하는 김찬우의 대꾸에 손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진지한 어조로 강하게 말을 내뱉었다.


"거기에 덧붙여 혁명가적 기질이 있는 자야말로 진정한 정치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정치는 모두가 바라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는 거야. 그러려면 구태를 벗어나려는 혁명적인 도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임자겠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 보장되어야 하느냐, 사회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가 우선 보장되어야 하느냐는 역사적으로 늘 딜레마였어. 마치 신체와 정신을 이원론적으로 가르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 그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혁명적인 시도가 필요해."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며 질문을 던졌을 것 같은 손정환의 논리에 김찬우가 유레카를 외치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정당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사회당~ 어때? 정환이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올랐어."


어린 사내처럼 들떠 있는 김찬우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권진아가 제법 신중한 눈빛으로 분위기를 다독이며 대꾸했다.


"정치는 단순한 영화 제작이 아니야. 유토피아를 한 편의 필름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 아니란 뜻이지. 굶주리고 헐벗은 누군가가 있다면, 억울하게 피 흘리며 죽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가엾은 인민들조차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치야. 그래서 정치는 예술과 비슷한 구석이 있지. 찬우가 지은 자유사회당 매우 좋은 걸~"


성훈은 그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지막하게 "자. 유. 사. 회. 당."을 입 밖으로 소리 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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