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막내 이모도 칠순을 넘긴 지 꽤 되었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녀가 통통하게 살이 붙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릴 적에 서울에 살고 계셨던 막내 이모가 간혹 청주에 방문하실 때면, 이모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과일을 사 가지고 오곤 하셨다. 엄마랑 닮은 듯도 한 외모였지만, 막내 이모가 엄마보다 한결 더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던 건 이모의 잔잔한 미소와 품위 있는 말씨 때문인 것도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북쪽에 살고 계시던 이모 동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모와 함께 식사를 할 때 식당 주인은 우리를 모녀 사이로 보고, "모녀가 둘 다 참 곱기도 하다"고 너스레를 떨며 반찬을 자꾸만 리필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 보면 식당 주인의 말은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엄마랑 이모랑 나랑 셋이 있으면, 사람들 눈에는 우리 엄마가 이모로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육이오를 겪은 어머니는 피난길에 막내 이모를 업고 걸었다고 회상하곤 하신다.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외삼촌과 막내 이모는 성품과 외모가 유독 많이 닮았었다. 그분들에 비한다면 우리 어머니는 조금 더 억척스러운 데가 있으신 분이다. 하기사 그 억척스러움 때문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두 딸의 횡포를 삼십 년 동안 참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육이오 터지기 두 해 전쯤에 태어난 막내 이모는 난리통에 먹을 것이 없어 부실하게 자랐는데, 결혼 후에는 시부모님 모시고 살며 봉양하느라 정작 본인은 챙겨 먹지를 못해 약골이라고 어머니는 늘 안타까워하셨다. 빠듯하게 정해진 생활비 내에서 더 싸고 좋은 식재료를 구해다가 음식을 장만한다고 한들, 시부모님 드실 것과 남편과 자식 먹일 걸 생각하면 살림하는 여자는 본인의 몸 생각은 뒷전이기 십상이다.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는 데는 어느 집이든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나서 시부모님이 몇 해 간격을 두고 돌아가셨기에 봉양할 시어른이 계신 것도 아닌데, 나는 고래적 아줌마도 아니면서 남편과 자식 놈들 먹이고 난 뒤의 남은 음식을 먹기가 일쑤다. 이건 희생정신이나 어머니의 무한 사랑과는 별개이다. 끼니마다 들어가는 음식 장만하는 비용과 수고가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어차피 저들은 먹을 것이 집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철저하게 입력이 돼있는 부류이다. 거기엔 남성인 "아버지"의 생각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걸 가지고 이제 와서 "부당하다"든가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고 내 목소리를 크게 내며 일종의 "불화(불일치)"를 야기하고 싶지 않다. 불화는 불통과는 구별되어야 하므로, 불화도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는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를 "진정한 정치"로 보지 않는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 형태로서 "치안 체제"를 의미하며, 진정한 정치는 세계(계급)들 간의 관계에서 서로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명하는 "불화(불일치)"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는 '체제'나 '형태'가 아니라, 관계들 사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일종의 '파괴적인 힘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 집단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권력 구조에 대항하여 관계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자본을 획득하려는 치열한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있다"는 커다란 죄목으로 발언권을 얻지 못하는 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다른 여자들은 집안 살림도 하면서 평생을 직장 생활하고 있다"는 바리케이드가 발언권의 최전선에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는 셈이다.
우리 집의 그 장벽을 뛰어넘을 수가 없는 나는, 랑시에르가 말하는 발언의 자리에서 배제된 데모스(demos)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집에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말하고 보니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흉보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내 글은 대부분 "집구석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라서 그러하다. 비방이나 헐뜯기가 목적이 아니라, 사유를 발전시키는 단계에서 의당 제기되어야 할 지점의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는 것일 뿐이다. 독자님들은 "나의 하늘님"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를 너무 단호하게 가지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집안도 다 정치적(랑시에르적 '정치'가 아니다) 행보일 뿐이다. 인생사, 정치적 순간이 아닐 때가 있을까 싶다. 이 글은 평생을 본인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우선 챙겨 먹지 못하고 늙어버린 막내 이모와 이 땅의 어머니들의 노고를 '추앙'하려는 데 그 목적이 우선 있다. 그다음 목적도 분명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독자님들께서 세련된 두뇌들로 스스로 알아채 주시기를~
어머니 등에서 업어 키운 막내 이모가 지금은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걱정어린 소식을 내게 전하며, 구순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가 틀니로 복숭아를 우물우물 씹어드셨다. 요양원이 아니라 실버타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더 이상 묻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막내 이모를 마지막 뵌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더 늦기 전에 요양원이든 실버타운이든 한번 찾아뵈야겠다.
식탁 위에 있던 컵을 설거지하려다가, 누가 먹다 남긴 물인지 컵에 남아 있는 물을 고무장갑 낀 손으로 마저 마셔버렸다. 그사이 내가 목이 말랐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