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by 도라지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갑갑했다. 중복날인 줄도 모르고 겁 없이 시내버스를 환승해서 타려고 걸어 나가다가, 찾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빈 택시가 "나 잡아봐라~"하며 천천히 지나가길래 결국 택시를 집어타고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관람료가 무료인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최고의 수장고형 전시실을 갖추고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규모가 상당하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어도 하루 방문에 한 층 혹은 전시관 룸 하나 정도만 관람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어제는 4층 특별 수장고에 소장되어 있는 드로잉 작품들을 관람했다. 드로잉이 단순히 완성작을 위한 밑그림이나 스케치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미술 영역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학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확장을 의미한다.


드로잉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형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미 거기에 작가가 의도하는 "개념(concept)"이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을 구상할 때는 반드시 도달하려는 지점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개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제(subject)"라고도 한다. 철학의 인식론에서 한 쌍의 개념으로 다루어지는 "주체(subject)와 객체(object)"에서 사용되는 "주체"도 "subject"로 표기되는 것을 보면, 결국 "주제(subject)" 혹은 "개념(concept)"이란 "주체로서의 작가 자신"을 드러내는 작동이라고 볼 수 있다.


"주체로서의 작가 자신"을 나타내는 작업은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과 춤이든 모두 일관된다. 그런데 재밌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것은, 문자로 된 언어를 사용하여 "주체"를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문학에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문학의 무한성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계성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뭉크의 <The Scream, 절규> 같은 작품을 떠올려보자. 유령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된 남성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감성을 집요하게 후벼 파지만, 관람자들은 법조문을 들이대며 판정하듯이 세세하게 그의 작품을 언어로서 찢어버리지는 않는다.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 <우주와 대지와 나와 디에고와 세뇨르 홀로틀의 사랑의 포옹> 속에서 수염 난 칼로의 품에 어린아이처럼 안겨 있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삶을 추측하기도 하지만, 언어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글처럼 섣부르게 난도질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학이란 것은 이미 "언어"로 형상화되어 펼쳐놓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언어로 그려진 전체 그림의 주제를 파악하기 이전에 한 문장이나 한 단어에 얽매여 작가의 주제 의식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법정에서 검사가 증거서류를 제출하듯이, "자, 당신이 쓴 글에 이렇게 적혀있지 않느냐?"라고 되묻곤 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타인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베토벤이 들리지 않는 귀로 곡을 작곡할 때,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그의 작품을 그가 듣기 위하여 곡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브런치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혼자 소장하기 위해, 브런치를 수장고로 이용하려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


"도라지"가 "How long~?"을 썼을 때 누군가 "삼류 작가"라고 말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다. 독자의 권리이므로 나는 존중한다. 하지만 "도라지의 남편이 도라지의 글들을 읽는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것은 도라지의 용기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은 작가로서 별로 존중하고 싶지 않은 물음이다. 남편이나 가족의 눈치, 혹은 도라지 작가를 알고 있는 주변 지인들이나 독자들의 눈치를 보며 글을 써야 한다면, 이미 도라지는 작가가 아니다. 작품의 자율성이 없는데 그 사람이 어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술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이다.


독자들의 반응, 미치게 중요하다. 하지만 몇 분 안 되는 독자들마저 입맛이 각각이요 시선도 제 각각인데, 구태여 독자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자율성을 침해당해야 하는가? 도라지는 "NO"이다. 어차피 돈도 안될 글이라면, 내 영혼에 부는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길을 가고 싶다. 글을 쓰면서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게 나 자신을 위해 무슨 소용일까? 내 영혼이 자유롭기 위해 오늘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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