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

by 도라지

공직자 남자 선배님과 공직자 여자 친구와 함께 셋이 어울려 횟집에서 소맥 곁들여 먹고 들어오는 길이다. 두 사람이 왜 내 글에는 허구한 날 남편이 좀 거시기하게 등장하느냐고 타박을 주었다. 나는 내 글 속에 B의 시선을 겨냥하여 글을 썼는데, 사람들은 내 글을 읽고 A의 시선으로 많이들 바라보는 것 같았다. 글은 발표되면 독자들의 것이라는 말을 오늘 또 한 번 실감하였다.

그래서 내가 변명 아닌 핑계를 댔다. 내 본성이 양지의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는 음지의 누추함을 감추지 않으려 하기에 그러하다고 했다. 이 말인즉슨 내가 남편 흉을 보는 것처럼 써놓은 글들 속에도, 거기엔 다른 부부들보다 오히려 더 원만하고 견고한 관계성이 저변에 이미 깔려있음을 함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선적이고 계산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부부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건 어찌 보면 차라리 원앙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제껏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내 글을 읽고 도라지라는 사람과 그녀의 글 속에 자주 등장하는 남편에 대해서 특정한 생각을 갖게 될 것에 대한 염려를 한 적이 없다. 솔직하게 쓴 글을 거리낌 없이 읽어주시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도라지라는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어떠한 순간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발생한 것을 기록할 나름이다. 욕심 같아선 B의 시선을 겨냥하고 쓴 나의 글을 읽고 누군가 B의 시선으로 그 글을 읽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해보았다.


주말마다 남편 하고, 토요일엔 이 산에 가고 일요일엔 저 산에 가는 부부가 대한민국에 과연 몇 커플이나 될까? 철철이 동해로 남해로 서해로 좋은 호텔 잡아서 남편과 단 둘이서 2박 3일씩 여행 다닌다고 쓰면 독자들은 재밌겠는가? 사람 심리가 원래 요상하고 야리꾸리하게 심술보가 하나씩은 있는 거다. 그래서 불구경, 싸움구경이 재밌다는 말이 나온 거다.


그래도 독자들로부터 괜한 시비에 걸려드는 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므로, 이제부턴 작정하고 남편 칭찬 좀 해야겠다. 사람이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마누라 술 먹으러 나갈 때마다 태워다 주면서, 누가 물으면 택시 타고 나왔다고 말하라고 하는 남편이다. 그 이유가 재밌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마누라 꼬봉질이나 하는 할 일 없는 남편으로 착각할까 봐서라고 한다. 써놓고 보니, 또 누군가는 A시선으로 읽을지도 모르겠다.. 아리송~


여하튼 우리 집 남편은 다른 집 남편들보다 마누라와 함께 있는 시간이 엄청 길다. 대한민국에서 사업하고 직장 있는 남자치고 5프로 안에 꼽힐 만큼 마누라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능력자다. 몇 해 전부터는 수입도 괜찮아져서, 다른 집에서 부부가 맞벌이해서 버는 만큼을 혼자서 다 벌어온다.


오늘은 이쯤에서 남편 자랑을 그만해야겠다. 택시가 잡히질 않아서 빗속을 걸어오다가 퇴근하는 큰아들 차를 불러서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이 혼자서 새로 개봉한 영화를 돈 내고 보면서 내 눈치를 본다. 만 원짜리 영화를 혼자 보는 것조차 마누라 눈치까지 살피는 그런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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