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철학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묻는 물질론적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학계는 이야기한다. 물론 그 질문을 던진 이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라는 것은 우리가 중학생 시절쯤에 익히 들었던 것도 같다. 만물 혹은 자연을 physis로 표기하는 것 또한 학계의 일반적인 전통이다. 그래서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인 '물리학'이 physics라고 표기되는 것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정신의 실체에 관한 질문보다 물질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었다는 것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서양 철학의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한다. 최초의 철학적 질문이 물질에 관한 질문이었다고 공표함으로써, 서양 철학은 존재론적 사유에서 출발했다는 당위성을 부여받게 된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정신과 영혼에 관한 중요성을 설파한 철학자는 있었지만, 대체로 학계에선 소크라테스로부터 인간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시켜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네 육체의 장단점 및 활용도를 알라"는 뜻이 아니라 "너 자신의 영혼의 깊이와 상태를 알라"는 뜻이었을 확률이 높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영원한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의 믿음을 물려받은 제자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체계화하기 위해 "이데아"사상을 창시하였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결국 기독교 사상으로 발전하였으며, 근대 과학이 발달하기까지 "정신과 영혼"을 추앙하는 사유의 전통은 '사후 천국행'이라는 티켓으로 민중들을 정치권력에 종속시키는 매우 유용하고 합법적인 장치로 작동했다.
과학이 발달한 시점에도 여전히 기독교의 영혼 구원 사상은 그 위력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사후에 그들의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절름발이처럼 반쪽의 계율과 반쪽의 탐욕으로 절뚝거리며 세상을 살아간다. 도덕과 욕망의 내적 갈등 속에서 언제나 뒤뚱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제 최초의 철학적 물음을 수정하여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근원은 무엇인가?"
며칠 전 선배가 타지에서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단다. 거세게 내리는 빗길 운전 중에 승용차의 와이퍼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제대로 작동이 안돼 십년감수하고 돌아와서는, 메모장에 급하게 "와이퍼 교체"라고 기록해두었단다. 요즘 우리 나이가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지 않아서 메모장을 뒤적이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와이프 교체~"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교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래도 교체해야 할 땐 해야지요, 안 그러면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지거든요."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이라서, 우리는 와이프나 허즈번드의 교체를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수십 년간 고민해도 교체 결정은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다. 단지 교체 비용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교체의 필요성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때가 있다. 사후에 내 영혼이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에서 짧지만 거짓 없는 평화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거짓이 있는 한 내 영혼에 진정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가 폭력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근원은 사랑이기에 그러하다.
"나는 너(와이프, 허즈번드)를 사랑하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 우리는 참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대답들만 늘어놓으며 살아가는 것도 같다. 인간의 근원이 사랑이라서, 거기엔 가족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까지 염려하는 사랑도 포함되는 까닭이다. 그나마 자본주의가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은, 가족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에 자본이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공공연한 농담이지만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며, 막연히 내 마음 한편에 교체비용 마련에 대한 섣부른 욕심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비용 장만은커녕 독자님 모습 뵙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고 보니, 이번 생에 교체는 어려울 듯하다. 인생의 날들 속에 비 오는 날만 있는 것도 아니므로, 작동이 매끄럽지 않은 와이퍼일망정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렇게 저렇게 한심스러운 시간들만 무더위 속에 지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