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다 있던 월경이 두세 달에 한 번씩 있더니, 그마저도 못 본 지가 벌써 여섯 달 되었나 보다. 호르몬 검사 같은 거 해보지 않았어도 이제 얼추 폐경이 완성되었음을 직감한다.
막상 말을 하려고 보니 오래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생리가 시작되기 전 남들은 성욕이 강해지거나 한다던데 나는 오히려 남편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곤 했었다. 그런데 폐경된 몸에서 생리가 오려는 것도 아닌데, 지난 일주일 동안 남편이 그렇게나 꼴 보기 싫었던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시시콜콜 설명하기도 참 지루하기도 하거니와 누워서 침 뱉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남편과 나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으련다. 남편의 운동화 빨아서 말려놓고 제 때에 운동화 끈을 묶어놓지 않았던 마누라의 실책과, 거듭되는 실수 속에도 아는 길이라고 우기며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한 마디 염장샷을 날리고야 마는 부덕한 마누라의 소치일 뿐이다.
돈 벌어 먹여 살리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비롯된 남편의 사소한 갑질 정도 너그럽게 눈감아주어도 될법한데, 어느 날엔가는 문득 남편의 갑질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횡포로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래서 늙은 아줌마는 혼자서 매우 심각하게 나의 노년을 또 생각해보았다.
조계종에서 실행하고 있다는 "은퇴자 출가제도"를 살펴보고, 처음 출가한 사람이 밟아야 하는 행자 생활의 고단함을 미리 시뮬레이션까지 해본다. 새벽 3시 기상 시간이 새벽 4시로 한 시간 늦추어졌다고는 해도, 새벽 4시 기상은 상상만 해도 내겐 너무 과분하다. 나는 그 정도의 절박함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아, 이 미련한 중생이여~
어디 먼 바닷가 근처나 혹은 숲 가까이 있는 대안학교에 철학이든 영어든 교사 자리라도 있나 알아보다가, 차라리 숙식이 가능한 기숙사 사감 자리를 알아보는 게 낫겠다고 방향 전환까지 해보았다. 그런데 육십 넘어 은퇴 시점에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할지 그것도 의문이다.
결국 또 원점으로 되돌아와있던 즈음, 형사사건 두 개의 모니터링을 위해 청주지방법원 223호 배심법정 방청석에 들어갔다. 별의별 사건들이 많지만, 요즘 부쩍 많아진 사건은 성범죄 관련 사건들이다. 얼마 전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기거하는 72세 사촌 형수의 방에 들어가 강간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69세 사촌 시동생, 이별의 의사를 건넨 오십 대 후반의 연인을 폭행한 오십 대 중반의 남자 등 남녀상열지사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건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참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법정에서 그러한 사건들을 목도하고 돌아갈 때마다 "my home", "my husband"가 주는 안식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곤 한다. 자연이 존재하는 한 수컷들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들임이 분명하다.
이꼴저꼴 안 보고 머리 깎고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게 나를 구원할 길이라고 생각해 보다가도, 풀뙈기 드시고도 억센 힘을 가진 늙은 스님이 어느 날 막걸리라도 드시고 억지를 부리는 날에는, 산속에서 도망칠 데도 없이 이상한 꼴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별 흉측한 상상마저 하게 된다. 법정에서 온갖 해괴한 사건들을 많이 접한 탓인가 보다.
차라리 이꼴저꼴이지만 보던 꼴이라서 낯설지도 않고 예측도 가능한 남편 꼴을 보고 사는 게 나의 구원이 아닐까 또 맥 빠지는 결론에 이르고야 말았다.
고추 만둣국으로 점심을 먹자고 부르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준비를 한 것도 같은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를 발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건만, 내 몸이 옛날 같지 않았다. 조금만 더 빨리 뛰었으면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는데.. 아, 이 늙어버린 몸뚱이여~
버스도 놓치고 결국 택시 타고 시내 나가서 고추 만둣국에 공깃밥 말아서 맛있게 먹었다. 친구랑 상당산성 가서 뙤약볕에 한 바퀴 산행을 하고, 놓쳐버린 버스에 대한 갚음이라도 하려는 듯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어이 버스를 잡아탔다. 친구 집 냉장고에 있던 과일과 야채 등을 한 가방 싸들고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십 분을 걸어오는데, 돌아갈 집이 있어서 그런지 흘러내리는 땀방울에도 기분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