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지인 언니의 텃밭에 가서 뜯어 온 상추를 일주일 동안 끼니때마다 실컷 먹었다. 언니가 상추를 포기째 뜯는 사이 나는 베이지색으로 잘 익은 강낭콩을 땄었다. 상추를 포기째 따면 그 포기에선 상추가 다시 자라지 못하게 되지만, 뙤약볕에서 상추를 한 잎씩 낱장으로 따는 일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인심 좋은 밭주인 언니가 수확한 고추와 상추를 열 포기가 넘게 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무겁지도 않은 커다란 비닐 자루를 한쪽 어깨에 걸머지고 걸었다.
큰 농사일 하고 온 아저씨마냥 집에 돌아오자마자 의기양양하게 작은 아들을 불러 수확한 농작물들을 펼쳐놓고 보여 주었다. 거실 바닥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꼬투리의 배를 갈라 강낭콩을 꺼내고, 며칠 전 단양 계곡에서 잡아다 손질해 두었던 다슬기에 부추를 넣은 된장국을 끓이고 부리나케 상추를 씻어서 저녁 식탁을 차렸다. 퇴근한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구운 삼겹살에 상추를 싸서 먹었다.
열 포기 상추를 언제 먹을까 싶었지만, 이제 남은 상추는 고작 한 포기뿐이다. 40일에 쌀 20킬로를 소비하는 우리 집의 식사 구조로 볼 때, 상추 열 포기 정도야 일주일이면 동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꼬불꼬불 아줌마 파마머리 같은 적상추 포기가 많이 담긴 비닐봉지에, 젊은 여자의 생머리 같은 청상추가 몇 포기 담겨 왔었다. 몇 포기 안 되는 청상추를 먼저 먹고 적상추를 나중에 먹었다. 오늘도 적상추 포기의 밑동을 자르고 하나씩 세심하게 세척을 하는데, 역시나 청상추보다 세척 시간이 세 배 이상 걸린다. 꼬불꼬불 주름진 사이사이로 흙과 작은 벌레나 알들이 교묘하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상추를 씻다가 문득 어제 읽은 기사가 생각이 났다. 이상순 씨가 제주에 오픈한 카페를 가지고 전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전여옥이 재벌딸의 빵집 운운하며 이효리 씨와 이상순 씨를 향해 비난 섞인 지적질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전여옥의 발언은 물론 누군가의 생계 현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적상추처럼 주름 뒷자락에 가려지고 붙어있는 것들이 많은 재벌딸의 빵집 오픈과 이상순 씨의 카페 오픈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옳지 못하다. "이 시대의 왕족 귀족은 연예인"이라고 했던 움베르토 예코의 말을 이상순 씨의 카페 오픈과 연관 지어 투척한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효리 씨와 이상순 씨 부부에겐 귀족의 오만성과 야만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이상순 씨처럼 커피와 음악에 대한 개인적 취향 때문에 카페를 오픈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전여옥은 생계형 주변 상권의 초토화를 염려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상순씨 카페 크기는 오히려 제주의 다른 카페들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아 보인다. 내가 그 동네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 지역 다른 커피숍의 오너들을 무조건 생계형 카페 운영자로 몰아가는 것 또한 다른 오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곡 작업과 기타 매체 활동 등으로 바쁜 두 사람이 일반인들처럼 카페 영업에 올인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첫 오픈 날에 주인 부부가 카페에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매너일 수 있다. 도리어 이상순씨 카페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 상권이 활성화될 확률이 더 높아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내가 너무 장사꾼의 안목으로 접근한 것일까.. 이상순 씨가 카페를 브랜드화시켜서 기업형 카페로 체인점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지구 가열로 끔찍하게 더운 날씨에 일개 동네 아줌마도 아닌 전 국회의원이 참 구설할 거리도 없나 보다.
주름이 많이 있는 적상추일수록 숨어 있는 벌레와 흙들이 더 많은 법이다. 청상추 같은 이효리와 이상순의 영혼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물게 순수한 진짜 귀족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이다. 온 누리에 새빛을 발할 것처럼 이름만 새누리당으로 지었던들, 그것이 국민의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던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쩌다 대통령이 되고 어쩌다 영부인이 된 사람들보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그들이 가진 것을 사람들과 나누려 하는 이상순 씨와 이효리 씨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남은 한 포기 적상추를 마저 씻어서 오늘 저녁상에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