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늘님

by 도라지

이 세상에서 내가 젤루 중요하게 여기는 건 '밥'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귀하게 여기는 건 '잠'이다.


육이오 난리통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내가 밥을 귀히 여기는 것은, 결혼 후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통장에 고작 단돈 몇 십만 원이 남아있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 집에 쌀을 가져다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 몇 푼 안 되는 통장 잔고에서 돈을 꿔간 친구도 있었다.


태생이 열등하고 예민하여 원래도 잠귀가 밝았던 내가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며 불면증이 오고부터는, 잠에 대한 갈망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어느덧 코로나 시국 삼 년째가 되었다. 예전에도 별다를 건 없었으나 코로나가 터지고 가족들이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들이 더 많아지게 되면서, 나는 하루 종일 밥상만 차리다가 밤을 맞이하곤 한다.


제대 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했던 대학생 아들과, 삼 교대 응급실 근무를 하는 큰아들의 밥시간은 일부러 짜 놓은 듯이 다르다. 거기에 일찍 퇴근하는 남편의 식사 시간마저 아들들과 겹치지 않기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밥 차리는 일에 온통 하루의 시간을 빼앗긴다. 대단한 밥상은 아니어도 끼니마다 식탁을 장만한다는 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노동력을 요하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식당에 나가서 밥 먹을 때도, 내 돈 내고 내가 사 먹는다고 너무 당당해하기보다는 적절하게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는 것도다.


식당의 힘든 주방일이 아닌데도 내 집 주방에서 땀방울 떨어뜨리며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옷차림부터 몸짓까지 정말 가관일 때가 많다. 동남아 스트릿 푸드 주인장의 컨셉이 바로 떠오르게 하는 마누라의 옷차림을 다른 남자 같으면 용인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집 남편은 마누라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마저 존중하는 입장이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하면서 가끔은 목에 작은 수건까지 두를 때도 있다. 머리에 수건까지 두르면, "이라샤이마세~"하며 손님을 반기는 일본 식당 점원 느낌일 것도 같다.


이렇게 귀하고 중한 밥에 대한 심상이 격상되면서부터 자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소소한 먹을 것에 대한 관심마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가시에 손등을 긁히면서까지 산딸기 한알을 더 취하게 되고, 올갱이 한 개도 예사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남편은 마누라 먹이려고 위험해 보이는 덤불숲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제는 무주군청 앞에 흐르고 있는 남대천(南大川)의 지류쯤 되는 작은 도랑에서 올갱이를 잡았다. 남의 집 앞에 주차를 해놓고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남편은 도랑 물에서 30분 동안 채취 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그 집 앞 골목길에 사는 흰둥이는 개집에 들어가서 자질 않고, 제 집 지붕 위에 엎드려 비를 맞으며 태평하게 잠을 잤다. 무덥고 습한 오후에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졌나 보다. 고개의 방향만 아래로 옆으로 바뀔 뿐 엎드린 자세도 고치질 않고 지붕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우리 차가 좁은 골목에 들어설 때 마주친 녀석의 눈빛은, 도심의 아파트에서 지내는 녀석들에게선 볼 수 없는 순수하고 너그러운 착함으로 가득했다.


빈 물병에 한통 가득 다슬기를 채워온 남편이 다슬기 통을 내게 건네고, 나는 건빵 다섯 알을 차창 너머로 남편 손에 쥐어 주었다. 남편이 흰둥이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자, 개집 지붕 위에서 흰둥이가 꼬리를 흔들며 내려왔다. 건빵 다섯 알을 받아먹은 흰둥이가 우리를 배웅했다.


천연기념물 249호 <무주 오산리 구상화강편마암>을 보고 가는 길에 올갱이를 잡은 그 개천의 하류에 놓여있는 오래되어 낡고 작은 교량이 너무 위험해서, 차에서 내려 즉시로 사진을 찍어 안전신문고에 신고를 했다.


안전신문고 앱이 있기 전에는 전국을 다니다가 시설물이나 표지판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되면 기록해두었다가, 집에 돌아온 뒤에 각 시청이나 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민원 글을 적어 제출해야만 했었다. 서너 번 신고하다가 각 지자체 홈페이지 방문 제출이 너무 번거로워서, 그냥 보았어도 보지 않은 것처럼 지나갈 때도 많았다. 이제는 그만한 수고를 하지 않고도 금세 신고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집에 도착해서 잡아온 다슬기를 서너 차례 씻어서 냄비에 담가 두었다. 하룻밤 지나고 또 새까만 모래알들을 토해놓은 올갱이들을 다시 여러 번 헹구어 다슬기국을 끓였다. 일요일엔 올갱이 잡아서 먹을거리를 장만해주고, 월요일엔 또 직장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온 남편이 곧 집에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밥상은 무주 산 올갱이국에 강낭콩 밥이다.


내게 먹을 거를 가져다주시는 "나의 하늘님"의 차 들어오는 소리가 월패드(wall pad)에서 들려온다.

이전 06화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