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흘렀다. 여자는 오늘이 화요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그녀는 그 남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화요일이 되고 보니 그 남자가 떠올랐다. 얼굴도 목소리도 그다지 기억나진 않는데, 희미만 조명 불 아래 처량하게 앉아 있을 남자가 공연히 신경 쓰였다.
오후 세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나가지 않으면, 그 남자는 오후 내내 거기 앉아 있겠지, 어쩌나...'
여자가 종교를 통해서 배운 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나가서 분명하게 나의 뜻을 밝히는 게 그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청대 앞 커피숍을 나갈 때 든 기분은, 데이트를 나가는 여자의 떨리는 심정 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제법 살집이 있어서 몸매를 가리려고 주로 롱스커트를 입는 그녀였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특이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조용하고 빠르게 긴치마가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어떤 남학생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 적도 있었나 보다. 어느 날엔 두꺼운 원서 하나를 가슴에 끼고 걸어가는데, 수녀 흉내를 낸다느니 뭐니 뒷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여고 동창생이 있는 건너편 사회학과에선 "영문과 수녀"라고 그녀를 부르기도 했었다 한다.
여자는 그날도 긴치마 차림이었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녀는 묵직한 살을 긴치마 속에 가리고 싶었다. 꼿꼿한 걸음걸이로 그녀가 그 남자 앞에 앉았다. 남자는 그녀가 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느긋한 표정이었다.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거 같아요."
나는 니가 남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여자는 분명하게 남자에게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또다시 떼를 쓴다.
"그러면 일주일만 더 생각하고, 다음 주 화요일 오후 3시에 다시 만나는 건 어떨까요?"
여자는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고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 그녀는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이 있고 난 뒤,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은 두 번을 더 만났다. 여자는 한결같았다. 남자와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질 않았다. 남자 역시 한결같았다. 그 여자 아니면 안 될 거 같았다.
여자가 그 커피숍을 세 번째 방문했던 화요일 오후, 남자는 쿨하게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호의적인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보는 게 될 수도 있으니, 여자를 동네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쿨한 태도에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까짓것 동네까지 바래다주고 싶다는 걸 거절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집이 저만치 보였다. 이 골목길에서 헤어지면 되겠다 싶어, 여자는 남자에게 악수를 먼저 청했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싶어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남자는 악수를 하고 남자답게 먼저 뒤돌아섰다. 남자가 서너 걸음 옮기는 걸 확인하고, 여자는 집으로 들어갔다.
(2021년 9월 15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