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프리덤

by 도라지

이태원 프리덤은 2011년 발표된 곡이라고 한다. 아티스트로서 뮤지의 음악성과 아이디어를 좋아하지만, 자주 듣는 노래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흘러나오면 듣는 정도에 불과하다.

음원 발매 당시에도 마트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리듬이 신나서 들었던 기억은 난다.


나는 기계 쪽이나 도구를 다루는 데 미숙하다. 소위 꽝손이다. 공대 출신 남편도 도구 사용에 적합한 두뇌와 열정을 타고나지 않았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우리는 산다. 불편할 만큼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부가 되었으니, 음악을 듣는 수준도 의타적일 수밖에 없다. 라디오에서 송출하는 대로 듣고 사는 편이다.


그러다가 신문물이 터졌다. 스마트폰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새로운 세상이다. 유튜브라는 신세계가 열리면서, 우리의 음악세계도 나름 넓어지고 있는 셈이 되었다.


요즘 내가 빠져있는 '잭&드미츄리(형돈이와 대준이)'를 듣다가, 어느새 알고리즘은 뮤지와 유세윤의 UV를 찾아낸다. 지난밤엔 UV와 JYP가 합세하여 만든 <이태원 프리덤> 뮤비로 나를 인도한다.


학창 시절 롤라장을 한 번도 못 가본 불운한 나조차도, 런던 보이즈 노래를 모를 수는 없던 시절 속에서 자랐다. 그만큼 우리에게 런던 보이즈는 필수템이었다.


런던 보이즈의 향수를 떠올리며 이태원 프리덤 뮤비를 보는데, 어라, 노랫말이 거슬린다.

"청소년은 대공원, 노인들은 양로원, 아이들은 유치원, 우리들은 이태원,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세 명이 우스꽝스러운 가발과 신박한 복장을 한 채, 율동에 따라 라임을 맞추며 노래 부른다. 자칫 신나는 리듬에 빠져서, 반복되는 구절 속에 이상한 단어가 섞여 있음을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양로원은 사회복지 시설이다.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들을 수용, 보호하는 노인복지시설이다. 보육원(고아원)과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된다.


대공원은 놀이공원을 포함한 휴식 공간의 의미일 것이다. 게다가 유치원은 엄연히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여기에 뜬금없는 사회복지시설 이름이 하나 등장한다. 양로원~


이태원과 라임을 맞추기 위해서 대공원, 양로원, 유치원을 노랫말로 가지고 온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연령대마다 노는 장소가 다르다는 기획 의도 역시 충분히 공감한다.


문제는 "노인들은 양로원~"이라는 구절에서, 노인들의 활동 장소를 설명하는 어휘 선택이 조금 난감하다는 거다. 그들이 코믹한 모습으로 "아이들은 고아원~"이라고 노래를 불렀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작사가 세 명은, '경로당'이나 '노인정'의 의미로서 '양로원'을 가져온 것 같다. 하필 단어의 끝이 '~원'자로 끝나는 말을 찾다 보니,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을 것으로도 이해된다.


그래서 제안한다. '노인들은 양로원'이라는 노랫말 대신에 '어른들은 미장원'이나 '취준생은 고시원', 혹은 '학생들은 대학원' 같은 가사는 어떨까?


'취준생은 고시원'도 듣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을 거 같으니, 그건 생략하기로 하자. 노랫말에 연령대가 겹치면 그것도 곤란할 테니, '어른들은 미장원' 정도가 무난할 것도 같다.


예전엔 정말로 동네 미장원이, 수다 떨기 위해 모이는 놀이터 개념이었다. 아버지들에게 복덕방이 있었다면, 어머니들에게는 미장원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젊음이 불타는 거리 이태원에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에는 적극 찬성한다. 관광객 유치를 통한 상권 활성화는, 국가의 경제적 측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노인 세대에 대한 부담 또한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인생 선배로서, 자식을 둔 부모로서 한 마디 하련다. 나도 어머니 젖 먹고 자랐고, 내 자식들도 엄마 젖에 소젖 덕도 보며 자랐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늙었으니 쓸모없을 거라고 단정 짓는 논리는, 자본주의가 양산한 효용성 원리에 기반한다. 효용성을 상실했다고 생명의 가치마저 상실하는 건 아니다.


가뜩이나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노인들이 있을 자리를 양로원으로 치환하는 건 더 서러울 것 같다.

노인들도 사회 경제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도입하는 고민을, 우리 젊은 세대와 함께 하면 더 좋을 것도 같다.


젊음이 불타오를 수 있으려면 우선 건강한 생명이 바탕되어야 한다. 생명의 가치가 존중받고 건강한 젊음이 자유를 불태우는 이태원에서,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과 거리를 걷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래본다.


(2021년 9월 23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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