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두메 앉은 이방이 조정 일 알 듯한다"라는 속담이 있단다. 나도 어느 날 "두메"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하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된 말이다. 출입 없이 집에만 있는 사람이 오히려 바깥 사정을 더 잘 아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사정을 더 모르는 경우에 쓰곤 한단다.
각설하고, 왜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요즘 시대에 두메산골은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인터넷 초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안 터지는 첩첩산중을 찾아내기가 더 어려울 듯하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보다 더 "두메"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기만 하다.
요즘 시대에 두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잘못된 소문이나 가짜 뉴스를 듣고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차라리 옛날 옛적 두메산골에 사는 까닭에 가짜 뉴스마저 들을 수 없던 시절이 더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고, 심지어 본인의 강직한 신념 체계 속에서 그걸 다시 퍼뜨리기까지 한다. 한층 더 위험하고 위협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부터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화천대유.. 이 말이 <주역>에 나오고 있다고도 하는데, 대학원에서 주역 강의를 고작 한 학기 들었으니, 어느 편에서 이 말이 등장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세상만사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주역>의 중심 테마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은 변한다"이다. '주역'의 '역'자가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고 교수는 힘주어 말했었다.
화천대유, 인터넷을 뒤져보니 뜻은 이러하다.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 수업 시간에 대유괘를 들었던 기억이 이제야 나는 것도 같다. 하늘이 화합하여 거들어주니, 당연히 크게 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텔레비전만 켜면 대선 후보들 얘기, 거기에 그들과 연관되어 끄들려 따라 나오는 수상한 얘기들로
정치권은 늘 소란스럽다. 가끔 아주 단순한 질문이 생겨날 때가 있다. "왜 저러는 거지?"
지능지수가 별로 좋지 않은 데다, 늙어서 두뇌 회전 속도마저 느리게 되어버린 내 머리로 매우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해봐도, 언제나 답은 정해져서 나오곤 한다. 더 많이 갖겠다는 욕심이다. 그것 말고는 정답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지능지수가 높고, 젊어서 빠릿빠릿한 두뇌들은 다른 답을 찾아낼 수 있으려나 궁금해진다.
사람이 한 생을 살다 가면서 먹는 밥에는 한계가 있다. 부자라고 하루 세끼 말고 열 끼씩 먹다가는 더 일찍 죽는다. 골프공이 굴러다니는 대궐 같은 저택에 산다한들, 남보다 더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다만 크게 불행하지 않을 수는 있다. 가난과 전쟁만큼 인간에게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기에 그러하다. 일단 부자는 가난에서 제외고, 전쟁 지역에서 태어났다한들 어디로든 떠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가난은 겪어본 자만이 안다. 그래서 크게 부자도 아닌 사람들이, 평생을 노동해서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아픔을 처절하게 아는 탓일 게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자. 모든 인간은 가난을 원하지 않는다. 하루 세끼의 밥과 몸을 눕히고 쉴 수 있는 방과 청결한 위생을 유지할 수 있는 생활공간 정도는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일을 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생리대 없는 여학생 이야기며, 밥을 굶는 아이들 이야기며, 학대받는 병든 노인들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종의 전쟁>에서 침팬지 시저는 무리를 책임지기 위해, 아니 침팬지라는 본연의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인간에게 보호받고 사랑받는 안락한 삶을 버리고 무리와 함께 떠났다.
우리는 인간이다. 침팬지 시저만큼만 되는 지도자를 원할 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삶의 단순한 진리를 알고 행하는 지도자 하나를 뽑아 세웠다 한들, 전체 무리를 순조롭게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종의 전쟁>에서도 시저에 대적하는 침팬지는 반드시 있었다.
가짜 뉴스에 휘둘리거나 현혹된 우리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태를 심층적으로 파악할 능력과 시간이 부족하다면, 매우 단순한 논리를 적용시켜보자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이든 범인은, 그 사건을 통해서 가장 이득을 많이 본 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를 믿어보자. 두메의 어리석음에 거하면서 민주주의의 조정 일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밥과 정치는 하나다. 굶는 사람 없게 골고루 나누어 먹는 정치, 우리가 바라는 건 그런 정치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야 한다'는 이 하나의 명제만을 기억하고 사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2021년 10월 6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