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백년 넘는 시간을 살면서, 딱 두 번 본 사이다.
한눈에 반한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머리숱이 듬성듬성해진, 낯선 사람 앞에서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 얌전한 오십 대 중반의 아저씨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법한 동네 사람처럼 생겼다.
한번 입을 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입을 열었다 한들 말이 길지도 않다. 말과 말 사이에 긴 쉼을 갖는 건, 그가 그때 그 장면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다시 그의 영혼에 머물고 있기 때문인 듯 보였다.
그의 언어는 어렵지도 애써 꾸미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비처럼 언어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사뿐사뿐 날아서 어느새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가 함께 있다면, 그를 가리켜 답답하고 느린 언어를 구사한다고 질책할지도 모른다. 능히 그럴만하다.
아, 사람이 입으로 내뱉는 말들이 그림을 그리고, 따스한 열감을 내뿜을 수 있음을 처음 느껴 보았다.
그는 소리 나는 음절로만 말하지 않는다. 소리가 던져지기 전에 눈이 먼저 생각에 닿아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입으로 내려와 입가에서 따뜻함을 예열한다. 그리고 언어가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
그가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도 전에, 첫눈에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고운 눈빛과 겸손한 입꼬리를 보아서다. 그리고 요란하지 않은 말소리 안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그를 본 것이다. I See You~
I See You에는 함축된 뜻들이 많다. 너의 영혼을 본다. 너의 생각을 읽는다, 너를 이해한다, 그래서 너를 좋아한다~
늦게 술자리에 합류한 신문사 논설위원이 칼럼 얘기로 미끼를 던진다. 나는 딱 잘라 말한다. "돈 안 주면 안 씁니다."
모 지역 일간지에선 칼럼을 무상으로 기부받는단다. 원고료를 받지 않는 건, 대자보나 탄원서 쓸 때뿐이어야 한다. 아니면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때여야 한다.
어찌 신문사에서 외부인에게 무료 칼럼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언론은 공명심에 들뜬 이들의 작문 연습소도, 정치꾼들과 은밀히 거래하고 조작하는 주식시장도 되어선 안된다. 언론과 노동은 일치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노동자들을 떠난 언론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칼럼을 쓰는 것도 노동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원고료는 지불되어야 한다. 작가는 마땅히 노동자여야 한다. 정치꾼이거나 유명인을 노려서도, 행세해서도 안 된다.
논설위원의 수작질을 단칼에 자르며, 내가 말했다.
"나는 이 짝에 붙었다니까요~"
내가 '붙었다'라고 표현한 것은, 생각과 행동의 노선이 같음을 의미한다. 딴 데서 미리 들은 바도 없었는데, 내가 '붙은' 그도 칼럼 청탁에 나와 똑같이 단박에 잘랐단다.
내가 '붙고 싶은' 그는 시인이다. 술자리에는 시인과 소설가와 논설위원, 그리고 신입 작가 이렇게 넷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대학교 출신이다.
소설가는 먹고 살기 위해 콘텐츠 사업을 한다. 주로 전시관 내부 공사를 한다. 논설위원은 당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신문사에서 고정된 월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신입 작가라고 하기에도 뭐한 나는, 남편 사업을 거들면서 가끔 철학 강사 노릇도 한다. 그리고 시인은 1인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우리 넷 중에 제일 정직한 사람은 정환 선배네요~"
술이 취하지도 않았는데, 처음 본 사람도 있는 자리에서 맘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사는 모습과 언어가 똑같은 사람은 저 선배 하나잖아요. 삶과 언어가 똑같은 사람이 정직한 거예요. 논설위원?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소설가? 공사 수주 걱정에 마음이 반은 회사에 가 있고. 저야 아직 쓸만하지 못하구요..."
뒤꼬랑지를 슬며시 내리며 내가 말했다.
처음 본 아줌마에게 칼럼 퇴짜 맞고 "같기도" 공격까지 받은 논설위원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맞네요. 정환이가 제일 정직하고 진짜 따뜻한 인간이죠. 정환이 언어를 다 알아듣는 당신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에요."
내 언어는 가끔 뾰족해도 타인을 무시하기 위해서 조준되는 건 아니다. 그도, 언론인이랍시고 목에 힘이나 주고 사는 영락없는 사기꾼은 아닌가 보다.
정환 선배가 4.3 사건에 얽힌 시집의 주인공과. 제주도 방문 기억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천천히 풀었다. 나열된 낱말은 몇 개 없고 중간중간 쉬어가는 호흡만 더 많은데, 듣고 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난생처음 진짜 시인을 보았다.
따뜻한 시는 결국 따뜻한 시인에게서 탄생하는가 보다. 삶을 정성스럽게 물들이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내가 정환선배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붙었으니까, 나도 정환선배처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런 소망을 해보았다.
(류정환 시인의 <말도 안 되는> 시집을 추천드린다.)
(2021년 9월 20일 밤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