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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Dec 01. 2023

주문을 외워보자, 바르칼라나~

평생을 직장 생활한 사람들이 듣기엔 시답잖게 들리겠지만, 난 단 한 번도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부럽지 않았다. 그들이 제아무리 고위직이라 하여도, 제아무리 명품으로 치장하고 리무진을 타고 출근한다한들 나의 게으를 수 있는 이 자유와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난 직장을 얻지 못해서 집에 있는 게 아니었다. 자발적 선택이었고 앞으로도 난 그 노선을 변경할 계획은 없다.


그런데 말이다, 직장 없는 나는 그들의 노고와 인내심을 존중해마지 않는데 직장 있는 그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무시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최근에 한 후배로부터 입은 내상은 아직도 회복이 안되고 있다.


직장인 그들은 '니가 집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거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일관성 있게 바라보기 일쑤다. 그들의 이미 결론지어진 말 없는 질문에 나는 무수히 많은 대답들을 가지고 있지만, 구태여 내가 그들보다 많이 알고 있고 어떤 분야에선 그들보다 뛰어난 업무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펼쳐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남을 무시하는 사람치고 정말로 온전하게 잘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데 집중한다. 근 이십 년이 되어가는 모임에서도, 매번 모임 때마다 친구들의 직장 얘기는 각기 다른 돌림노래가 되어 그 자리를 메꾸곤 하였다. 당연히 나는 듣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자리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듣는 자의 상태로 내가 너무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는 점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는 내가 모든 모임을 주최하면서도, 오프라인 모임에만 나가면 거의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조직에 감정을 쏟아붓지 않고 열정을 쏟아붓는 나의 공동체관이 내 여타의 감정들보다 우선하는 탓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보편적 진리에만 국한되어 그 교리를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세등등한 직장인 친구들의 끝 모르는 존재감에 지쳐있을 즈음, 삼 년 전 조직한 또 다른 모임에 새로운 고위직 여성 회원이 등장하면서 사뭇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날이 설수록 한편에선 그걸 다듬어야 하는 쇠망치 소리가 요란해지는 법이다. 권력과 이득 관계, 이런 조짐이 모임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제 술맛은 물 건너간 것과 다름없다. 술맛은 진즉에 떨어졌고 편파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스토리를 두드리는 대장장이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나는 그 스토리를 재밌게 읽어가는 독자가 되기로 하였다.


독자가 되기로 결심은 하였지만 내 속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조직 내의 황망한 뒷 이야기를 그 조직에 속해있는 구성원들과 나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깔끔하게 탈퇴조차 할 수 없는 어설픈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어수선한 나의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했다. 내가 울컥하여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여도, 이미 오래전 나의 성정을 파악하고 내 영혼의 침묵마저 읽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했다.


그에게 톡을 보냈다. "인도에 있다"라며 그가 즉각 전화를 걸어왔다. 돈이 많지 않은 그이기에,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간단하게 일련의 상황을 다시 톡으로 그에게 전달했다. 그 모임에서 당장 탈퇴하라는 그의 조언이 날아왔다. <약육강식 갑과 을, 그런 게 없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지상 목표>라고 말하는 그가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가 사문시절에 배운 세 가지를 적어 보냈다.


1. 깊이 생각하는 능력 -- 명상

2. 굶는 능력 -- 돈에 개의치 않게 됨

3. 오래 기다리는 능력 -- 인내


그리고 그는 그 세 가지 능력에 조직이나 타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그가 "시시한 고민 끝내고 커피나 한 잔 하면서 바르칼라나 찾아보기"라는 지령을 내게 남기고 홀연히 "바르칼라"로 향했다. 나는 "바르칼라"라는 지명을 올바르게 알아채지 못하고 그가 향하는 곳이 "바르칼라나" 지역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곤 혼잣말로 조용히 "바르칼라나"를 소리 내서 읊조려보았다.


바르칼라나~ 신기하게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모든 어수선했던 마음들이 사라졌다. 나의 스승이며 친구인 그가 나에게 건네는 격려주문이자 축복인 것도 같았다. 남자 주인공이 "~ ~ 바숨"이라는 주문을 외우게 되, 그의 몸이 버지니아에서 화성(?)으로 이동하는 영화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의 장면들도 떠올랐다. 나에겐 사랑의 운명처럼 딱히 가야 할 "바숨 행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 읽은 "바르칼라나~"에서 다시금 내 마음의 길을 찾는다. 


 무엇으로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하고 싶은 친구들과 후배들, 그래, 너희들 잘났고 나는 그저 그렇다~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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