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청춘 스케치 8

by 도라지

선희의 소프라노 톤의 음색이 한층 더 높은 음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너 지금 당장 나가봐야 해, 그러다 선생님들께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학교 선도부장이 이래도 되는 거니?"


선도부장 명함까지 거론되는 걸 보니, 분명 사태가 심각한 건 맞는 거 같았다. 뭔지는 몰라도 선희가 집에도 안 가고 되돌아왔을 정도면, 큰일이 난 게 틀림없다. 선희를 따라 쏜살같이 교문 쪽으로 뛰어갔다. 교문 앞에서 선희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 어디로 갔지?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선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학교 앞 버스정류장 쪽에 서있던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서 큰 걸음으로 걸어왔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아주 낯설지가 않았다.


"서은아, 나 송 진태야, 기억 안 나니?"


굵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나보다 서너 살은 더 많아 보였다. 누구지? 이름도 낯이 익긴 하는데, 어두워서 그런지 선뜻 그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국민학교 동창이라고 밝히고 나서야, 그를 알아보았다.


국민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같은 반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날 유난히 괴롭혔던 두 명의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송진태는 그중에 한 아이였다. 그 애는 어릴 때부터 발육이 남달랐다. 나는 덩치가 크고 선이 굵게 생긴 그 애가, 나보다 한참 오빠 같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애는 나를 괴롭히려고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내 편을 들고 나를 보호해주려고 다른 애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인상을 찌푸렸던 것뿐인데, 나는 그걸 보고 그 애를 무서운 애로 인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학교 시절부터 힘이 셌던 그 애는 일명 학교 짱이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학교 짱을 한다느니,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경희가 했었다. 경희는 국민학교 동창생들 소식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간 이후로도 지역 내 서클에서 활동 중인 아이 중에, 그 애 이름도 있었던 거 같기도 했다.


"아, 송진태? 오랜만이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왔어? 혹시 니가 나를 찾았니?"


나는 진태를 맹학교 쪽으로 안내했다. 우리 학교 앞에서 그 애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맹학교 교문은 다행히 한 쪽이 열려 있었다. 운동장에 벤치가 있겠지만, 굳이 앉아서 길게 이야기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기숙사 쪽으로 난 길 앞에서 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네~ 잘 지내니?"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진태가 덩치에 안 맞게 약간 수줍게 망설이며 대답했다.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놀랬지? 며칠 전에 소연이를 만났어. 소연이랑 민석이 사귀는 거는 알고 있지? 내가 소연이를 따로 만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진태가 긴장을 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려고 했다.


"소연이가 그러는데, 니가 대학을 서울로 간다고 했어. 서울로 대학 가면, 정말 너를 못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간다고? 나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소연이랑 연락을 안 한지 벌써 삼 년도 넘었다. 진태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나 국민학교 때부터 너 좋아했어. 서은아~"


난데없는 사랑 고백에,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눈길을 딴 데로 돌려 버렸다. 기숙사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 진태의 얼굴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2021년 10월 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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