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청춘 스케치 6

by 도라지

"그럼 그 남자애는 우리랑 같은 학년인 거야?"


재일이의 질문에, 나는 엉뚱한 대답을 흘리며 말꼬리를 돌린다.


"응, 동갑이야. 걔는 수학을 가르치고, 수정이가 국어, 내가 영어 맡기로 했어~"


공부도 공부지만, 일단 책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재일이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뭐야, 결국 나머지 공부반이잖어. 너는 공부를 거기까지 가서 하고 싶니?"


재일이가 도시락을 두 숟갈 뜰 때쯤, 떡볶이 냄비가 나왔다. 맨날 먹어도 맛있는 떡볶이에 감탄하면서, 도시락으로 손이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난 공부하는 모임 같은 건 생각만 해도 싫다~ 그 남자애가 그렇게 잘 생겼어? 니가 남자애들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건 아닐까? 내가 한 번 봐야, 정확하게 평가를 할 수 있는데~"


재일이가 나의 안목을 의심하며 말했다.


"너네는 문파가 다르잖니. 너 지금 다니는 교회 장로교지? 걔는 감리교란 말이야~"


문파 운운하는 나의 어깃장에 재일이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러는 넌, 천주교잖어. 그게 더 안 어울리지~"


"흠, 지금 종파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니~ 천주교와 개신교는 어차피 종파 자체가 다르지만, 너네는 장로교와 감리교, 문파가 다른 게 더 문제라는 거지. 너 불교 신자가 가톨릭 신자 되고, 가톨릭 신자가 불교 신자 되는 거 봤지? 종파가 다르면, 오히려 옮겨가기가 더 쉽다니까, 맘만 먹으면~"


별 것도 아닌 엉터리 논리를 들이대는 나의 언변에, 재일이는 복잡한 거 딱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알겠네 알겠어~ 너 준영이란 남자애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무슨 니 보물이라도 되냐?"


그렇지, 고작 우리는 한 번 본 사이일 뿐이다. 사남매의 둘째라는 것과 고등학교 자퇴생이라는 것 외에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없다. 그런데 벌써부터 그 애를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숨기고 싶기도 했다. 참 모를 일이다.


도시락과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 떨고 있는 사이, 다른 테이블에 애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털보네 오빠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학교에 안 가니? 저녁 시간 아까 끝났어~"


오빠는 학교 옆에서 가게를 하고 있어서, 우리 학교 시간표를 다 알고 있다. 어떤 때는 우리도 미처 모르는 다음 달 학교 행사 일정을 먼저 알 때도 있었다. 우리는 준영이 얘기와 재일네 교회 남자애들 얘기로, 저녁 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정문은 물론 닫혀있을 테고, 후문마저 닫혀 있었다. 후문 옆의 학교 담장은 그리 높지가 않다. 우리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도시락통 두 개를 나란히 담벼락 위에 먼저 올려놓는다. 그리고나서 으레 그런 것처럼 재일이가 후문 옆 담벼락 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나는 신발을 벗어서 얼른 담장 안으로 던져놓은 뒤, 재빨리 재일이의 등을 밟고 올라섰다. 폴짝하고 내가 담을 뛰어내리는데, 어느새 재일이가 벌써 내 옆에 서 있었다. 재일이는 나보다 키도 크고 다리도 길 뿐만 아니라, 운동 신경이 남달랐다. 재일에게 학교 담장 넘기쯤이야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였다.


그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자전거 타고 아버지 가게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린 적도 있다. 고 1 여름이었다. 한 손엔 무언가를 들고, 한 손으로만 핸들 잡고 자전거 타고 가다가 벽이랑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었다. 아니, 사고를 당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두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있었어도 그런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재일이가 사고를 냈었다.


고1 칠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주말에 못 봐서 더 궁금했던 재일이가, 아침에 등교해서부터 2교시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의 재일이는 목사님 딸 선희의 수선스러움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명랑했던 아이다. 어디가 아픈 건지, 주말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더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재일에게 쪽지를 보냈다. 재일이는 은근 문장에 약할 때가 있다. 나의 수려한 문장에 감복했던 건지, 아니면 그녀가 스스로 답답해서 말문을 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재일이가 조그맣게 입을 열고 말을 하는데, 발음이 약간 새는 소리가 났다. 친구들이 우르르 재일이 책상 앞으로 몰려들었다. 재일이의 앞니 두 개가 부러져서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모두 놀라서 눈만 둥그렇게 뜬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재일이가 부러진 앞니를 드러내며 차라리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2021년 10월 6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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