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청춘 스케치 7

by 도라지

담장 너머로 던져 놓은 신발을 찾아 신고 있는데, 저만치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재일, 이서은, 오늘 제대로 걸렸구나, 요놈들~"


내가 운동화를 신으며 구부정한 자세로 저쪽을 응시해보니, 다행히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유, 선생님~ 담벼락이라고 해봤자 제 다리 길이만 한 걸요. 한 번만 눈 감아주세요~"


재일이가 선생님께 먼저 달려가 선생님 팔을 붙잡고 필살기를 부린다. 잘한다, 우리 재일이~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지만, 우리가 이 학교를 졸업할 때쯤 교사직을 그만두고 신학과 대학원 가서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인생에서 첫 제자들이었다. 우리가 이 학교에 입학할 때, 선생님도 처음 교사로 부임해서 첫 담임을 맡은 아이들이 우리들이었다.


"얘들아, 그래도 그렇지, 혹시라도 담 넘다가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어쩌려고 그래.. 재일이는 내일 운동장에서 제식훈련 연대장 해야 하는데, 다치면 안 되잖니. 서은이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왜 선도부장에 임명하셨겠니? 너네들 이러고 공부 안 하고 담 넘고 다니는 거,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지~ 그래도 또 담 넘고 다닐 거야?"


그 당시 여고생들의 수업 시간엔 일주일에 한번씩 교련시간이 있었다. 무뚝뚝한 여선생님이 요란스러운 파마 머리를 하고 마치 군인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연례 행사처럼 운동장에서 줄을 맞춰 걸으며, 교장선생님 계신 교단 쪽을 향하여 재일이의 구령에 맞추어 일제히 거수 경례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짐짓 화가 난 사람의 말씨를 애써 흉내 내 보셨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의 두 눈은 웃고 있었다. 오늘따라 선생님의 코밑에 난 수염들이 유난히 까매 보였다. 아침에 분명히 면도를 하고 나오셨을 텐데, 저녁만 되면 코밑 주변이 4B 연필로 찍어놓은 듯이 새까맣고 작은 점들로 가득했다. 한나절 새 수염이 빠르게도 자라나 보다.


나는 1학년 때 선생님 자취방에 딱 두 번 가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재일이와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서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선생님 자취방에 수시로 찾아가곤 했었다. 2층 방에 세 들어 살던 선생님 집주인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30년 넘게 학교 앞에서 처녀 총각 선생님들 방주인 노릇했지만, 이렇게 유난 맞은 여학생들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 유난 맞고 별스러운 여자애들이 떼거리로 몰려와도, 총각 선생님은 매번 반갑게 웃으시며 라면을 끓여주셨다. 학교에서도 가끔 예배 시간에 기타 반주를 하시며 가스펠송을 부르긴 하셨지만, 선생님 자취방에선 가스펠송 대신에 우리가 아는 가요들을 함께 부르곤 했다. 기타 선율처럼 정말 행복했던 여고 1학년 시절은 눈부시게 빨리 지나갔다.


선생님께는 다시는 담을 넘지 않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듣는 선생님도 말하는 우리도 다 같이 그 약속의 거짓됨을 알고 있었다. 각자의 교실에 도착할 때쯤, 야자 학습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우리 학교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 친구들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시내보다 조금 더 일찍 끊기기도 하여서, 선생님들께 미리 허락을 받고 여덟 시 전에 귀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옆반 선희의 아버지는 청주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근교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선희도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자연스레 교실에서 사라지곤 했다.


시계가 저녁 여덟 시 십 분을 가리킬 무렵이었다. 우리에겐 아직 한 시간의 야자가 남아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어야 할 선희가 헐레벌떡 우리 교실로 뛰어들어왔다.


"서은아, 큰일 났어~ 너 빨리 교문 앞으로 나가 봐."


교실 뒤쪽에서 시끄럽게 수군거리는 소리에, 우리 반 친구들이 다들 뒤를 돌아다보았다.


(2021년 10월 7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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