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병원 문을 나서시며 외투에 손을 집어 넣으셨다. 움푹 들어간 눈밑 주름골 사이로 물방울이 맺힌 걸 보니, 손수건을 찾으시는 듯 보였다. 어머니가 낡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시는데, 우리 집 아이들 애기 때 쓰던 거즈 손수건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큰아들 녀석이 다음 달이면 스물여섯이 되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저걸 갖고 계신다. 나는 허리가 굽은 어머니의 왜소한 팔꿈치를 거들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든 일곱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허리가 꼿꼿하신 아버지의 발걸음도 어머니 속도를 맞춰 느릿하게 산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병원에 갇혀있는 언니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의사 선생님과 면담만 하고 돌아서는 길이다. 언니의 정신 질환은 완치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재로선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하긴 어려운 상태라고 말하는 젊은 의사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도, 부모님은 잘 알아듣질 못하셨다. 내가 큰소리로 전달해 드려도 부모님은 절망하는 기색이 없어 보인다. 30년 동안 기적이니 하느님의 치유니 그런 희망을 갖고 말씀은 하셨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체념을 하신 건지 두 분 표정을 봐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언니의 병은 어언 30년이 되어가는 병이다. 처음 발병했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백 프로 완치는 아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상태로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치료 시기를 놓친 게 너무 안타깝다고 아직 젊어 보이는 그녀가 의사로서의 소견을 건네 왔다. 본인의 지위와 명예만 내세우던 국립대병원의 명망 있다는 의사와는 전혀 다른 태도와 말씨였다. 공연히 덩달아 나까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작은 언니는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조현병 환자이다. 극도로 분열된 정신세계로 인해 밤과 낮을 구분하지 않고 성당 신부님과 수녀님을 찾아가 괴롭힌 탓에, 이번엔 성당에서 나서서 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몰래 이사 오기 전에 당했던 고통이, 몇 달 전부터 신부님과 수녀님의 몫으로 넘겨졌던 것이다.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다가, 정작 당사자로서 당해보고 나서 드디어 신부님과 수녀님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입원 처리를 도와주었다.
우리나라는 인권이라는 기본권이 우선이기에, 조현병 환자의 이상 행동에 대한 사회적 대처가 체계적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지가 못하다. 정신질환을 가족 간 이익 분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기도 해서, 환자 본인의 결정권은 더욱 강화된 반면에,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해소와 환자의 이상 행동의 발현에 대응하는 사회통합 시스템은 아예 제도화되어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질환 발병 이후 30년이 가까워오는데, 그동안 언니는 총 4번, 입원기간은 합산하여 일 년이 채 되지 못한다. 언제나 어머니가 언니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이제는 너무 노쇠해서 당신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드신 부모님은, 예전과 다르게 빨리 퇴원시키겠다는 말씀을 안 하고 계신다. 결국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언니 두 명을 오빠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늙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졌다. 특히나 맹신적인 천주교 신앙으로 두 딸들에게서 사탄을 몰아내겠노라고 평생을 기도만 하신 어머니가 더 밉고 원망스럽다. 그러나 지금 내겐 원망도 사치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두 언니를 돌봐야 하는 나는, 누군가를 원망할 시간마저 없이 바쁘다.
이제는 공격성이 사라지고 환청과 망상 증세가 덜한 큰언니는 전교 1,2등을 다투던 수재였다. 명문대 약대를 졸업하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녀의 허무한 인생이 가엾긴 하지만, 집에서 늙으신 부모님과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다. 그마저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 고통과 시련을 안고 있는 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언니들이 아니다. 각자 가정을 이루어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빠와 내가 이 모든 책임과 고통을 떠안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시고 코를 훌쩍이며 차에 타시더니, 다시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고 계신가 보다. 어머니가 그토록 신뢰하는 하느님의 뜻은 인간은 알 수가 없는 것이기에 그러하단다.
나는 어머니의 저 헛된 믿음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변하지 않고 굳건하기를 바라고 있다. 어머니의 신앙이 훌륭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내게도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한 평생을 병든 두 딸을 지키며 살아온 한 인간의 어리석지만 헌신적인 희생이 지극히 가엾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그런 부질없는 믿음이라도 끝까지 갖고 계셔야, 어머니 돌아가실 때 눈이라도 감으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코로나가 무섭긴 해도, 부모님 집과 가까운 식당에 들러 곰탕 한 그릇씩 사드렸다. 점심때가 지나 1시 30분이 되었으니, 시장하기도 하셨나 보다. 차에서 연신 묵주를 돌리며 눈물을 닦으시던 어머니도 곰탕 한 그릇을 맛있게 드신다.
집에 돌아와 사회복지사 공부를 등록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부모님 돌아가시고 두 언니를 보살피고 사는 데 행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언제고 요긴하게 쓰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온라인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육신과 정신에 기운이 있는 날까지는 어떻게든 언니들을 지키며 살아야 할 것만 같아서다. 내겐 언니들보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명백히 있다.
그런 상념들이 떠다니는 날, 나는 혼자서 가끔 막걸리를 마신다. 곡물로 빚어서 그런지, 마음에 힘이 없을 때 막걸리를 먹으면 기운이 난다. 술 먹는 핑계도 참 가지가지다. 흐흐흐..
(2020년 12월 21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