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매사에 꼼꼼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돈 버는 일에서 특히나 사람 관계에선 허술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 해전 사기를 당해서 큰돈을 떼이고도 사기를 쳤던 그가 다시 찾아와서 또 다른 사탕발림으로 아버지를 홀리면, 다시 그에게 돈을 투자하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어쩌다 사업의 길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거기까지는 이야기를 전개시키진 않겠다.
오십 대에 사업을 일찍 접으시고 지금껏 30년 세월을 일하지 않고 생활하고 계신 데는, 그나마 당시에 가보지도 않고 돈만 보내서 사두었던 작은 땅뙈기와, 다행히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분석적이며 치밀한 아들 하나를 잘 둔 덕이다. 그렇게 저렇게 남들에게 날린 돈이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해본다면 수억 대를 훌쩍 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족은 굶지 않고 살아남았다.
평생을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한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어리석은 남자랑은 결코 결혼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생각 역시 막연하고 미숙했음은 오래지 않아서 증명되었다. 나 외에 그 어떤 여자와도 결혼이란 걸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저 혼자 섣부른 결론을 내린 뒤, 나를 죽자살자 쫓아다닌 한 남자랑 결혼해서 살아보니, 이 분 또한 우리 아버지 못지않게 팔랑귀에 분석력 제로의 소유자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가장 싫어했던 그 부분을 아주 제작해서 맞춘 듯이 내장하고 있는 남자가 내 일생의 반려자가 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성당을 다니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냈는데, 신은 결정적일 때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셈이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국 나는 창조론에서 빠져나와 차라리 진화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 26년째, 나는 지금 쪽방에서 잠을 자며 투쟁 중이다. 내년이면 쉰여섯 되는 남자의 태생적인 기질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남편의 경솔함에 대항하여 나름대로의 투쟁을 하고 있다.
남편의 몇 차례 사업 실패로, 나는 본의 아니게 분석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의 흉내를 낼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강화된 나의 업무 능력을 남편이란 사람은 본인이 사장이라고 인정하려 들질 않는다. 본인께서 저지르고 싶은 사업 아이템에 관하여 조사하고 분석한 나의 자료는 일개 마누라의 잔소리로 들릴 뿐인가 보다.
이번에 저 아이템은 효율성 측면에서 사업성이 떨어지는 데다, 하필 남편이 거래를 트고자 하는 거래처 사장은 한눈에 봐도 위험한 상인데, 면담을 해보니 영락없는 사기꾼 형이다. 저런 사람은 언제고 어떤 식으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다. 더 오래 두고 볼 것도 없이, 그쪽에선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얼토당토않은 계약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계약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버선발로 불 속에 뛰어들겠다고 덤벼드는 남편이 사기꾼보다 더 미웠다.
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을 서류로 작성해서 남편인 사장에게 제출했음에도, 남편은 본인이 사장이고 남자랍시고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번엔 나도 이대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인 기질의 남편을 이기기 위해 내 안에서 더 강한 캐릭터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지 감정이 상해서 친정으로 외출을 하거나, 남편과 언쟁을 하는 등의 캐릭터가 아니다.
별거를 하기로 했다.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따로 원룸이라도 얻어서 나가자니 돈도 들고 시간적으로도 효율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며칠째, 한 지붕 내 별거의 형태로 쪽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결국 남편의 경솔함에 대해 투쟁하려고 내가 고안하고 발굴한 캐릭터는 쪽방지기 더부살이 신세의 아줌마다.
현재 출강하고 있는 고등학교 철학 강사 일은 수입이라고 할 것도 못된다. 영어 기간제 교사 정도 이외에 딱히 다른 일자리를 얻기에도 나이가 너무 많다. 그런데 영어 실력이 신통치가 않아서, 그 일자리는 청탁이 들어와도 내가 사양할 지경이다. 5~60세대에서 가장 인기 직종인 요양보호사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본다. 무릎도 시큰거리는데 내가 요양보호사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의심에 앞서, 이 자격증 따기도 수월한 게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밥 벌어 먹고 사는 게 참 만만치가 않다.
옷방으로 쓰고 있는 쪽방에서 일주일 넘게 바닥 생활을 하고 있자니 온 몸이 뻐근하다. 그래도 이대로 별거 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먼저 안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은 사업이며 동시에 내 인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0년 10월 13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