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나에게 특별한 재능 하나를 주셨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잘 듣고 정리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노트 필기를 따로 안 하고, 내가 정리한 노트를 복사해서 돌려 보기도 했었다.
이 능력이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 늙은 두뇌와 근력 없는 오른손에 아직도 남아있는 걸 확인한다. 재판의 흘러가는 정황이 궁금한 피해자를 대신해서, 법정에 가서 모니터링을 할 때이다.
증인신문 출석 요청을 따로 받지 않아서 법원에 구태여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피해자의 경우, 피고가 무슨 말을 하고 피고인 측 변호사는 어떤 변론을 하고 있는지가 매우 궁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검사는 제대로 피고에게 해야 할 질문을 하고 있는지, 판사는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가고 있는지 두루 염려되고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연히 법정에 갔다가 피고랑 행여나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꺼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 피해자들의 고충을 알기에, 나 같은 사람도 쓸모가 있어진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없듯이, 어떠한 사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든 피고인이든 그들 마음대로 검사와 판사를 고를 수가 없다. 다만 그들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건, 돈을 주고 사는 변호사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 그 사건에 배정된 담당 검사나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피해자와 피고인의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각 사람마다 보는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직도 고시생처럼 덥수룩한 외모에, 학교 수업 시간에 억지로 호명되어 일어나서 교과서를 읽는 학생처럼 피고에게 구형을 주문하는 검사라도 걸리는 날에는, 사건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아주 죽을 맛이다.
법정 안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 증인석 앞에 다 성능 좋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코로나 시국에 플라스틱 가림막을 설치해놓았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말한다 하더라도, 마이크 볼륨을 일부러 낮게 조정한 게 아니라면, 방청석에 다 들리고도 남는다.
지난번 재판에서 모두를 고생시켰던 긴 단발머리 여자 검사가 등장할 때, 나는 마스크 속으로 크게 한숨을 지었다. 바짝 긴장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 여자 검사는 웅얼거리는 화법의 고수다. 일부러 방청객들에게 들리지 않게 말하는 건지, 도통 그녀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걸 또 알아듣는 판사와 피고 측 변호사도 대단하다. 저들끼리는 비밀 암호까지도 다 알아들을 수 있나 보다.
그녀가 오늘도 또 웅얼거리며 피고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판사가 그녀의 웅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가로챘다.
"검사, 방청석에서도 다 알아듣게 똑바로 말씀하세요."
지난번 판사와는 사뭇 달랐다. 방청석을 응시하다가 검사를 응시하는 판사의 눈빛이 노련해 보였다. 검사복을 입은 채로 탁자에 엉거주춤하게 기대듯이 서있던 검사가, 자세를 똑바로 고치며 조금 똘똘해진 말씨로 다시 피고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문장이 어디서 끝나는 건지 알 수도 없게 메마른 음색으로, 그녀는 아래로 툭 떨어지는 특유의 웅얼거림을 구사하곤 했다. 그녀의 웅얼거림은 언제나 "......해주십쇼" 라고 끝나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 판사에게 주의를 받은 그녀는, "... 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다르게 끝을 맺었다.
한 달 뒤 또 다른 재판에서 그 여자 검사를 보았다. 처음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염세주의자 컨셉으로 단발머리 속에 얼굴을 가리고 비스듬히 앉아있곤 했던 그녀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검사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2021년 10월 15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