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언어

by 도라지

어릴 때 어머니가 마을 앞에 있는 큰 나무 아래 평상 위에 앉아, 앞집 아주머니와 이야기 나누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글쎄, 그 대추나무집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네요~ 며칠째 집에 안 들어오고 있대요~"


또 다른 어떤 날에는 뒷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마실 오셔서 한참을 어머니와 수군거리시는데, 오고 가는 대화는 이러했다.


"염소집 마누라가 바람이 나서, 아예 짐 싸들고 집을 나갔대요~"


주로 어머니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은밀하게 숙덕거릴 때는, 마을에서 한 집은 벌써 풍비박산이 났거나 폭풍 전야같이 위태로운 상황들이었다.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들었던 얘기들과 소설책들에 나타난 이야기 속에서, 주로 남자들은 바람을 피운 능동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여자들은 바람이 난 피동적인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의식 체계의 단면을 드러내는 일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언어는 우리의 의식 체계를 수반한다. 언어가 선택되고 문장 속에서 나열되어 구성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하는 이의 의식 상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시대에 살던 어머니들의 언어는, 주로 구전되어 사회 속에서 흘러 다니는 의식의 체계를 무분별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면서, 나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도라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라지의 글을 읽고 독자가 되어주신 분들께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주책맞은 나의 초대에 선뜻 응해주시고 한달음에 달려와서 독자가 되어주신 몇 명의 지인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 나는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주로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연령대가 나와 비슷하거나,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함께 공감해주는 분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젊은 층이 내 글을 읽으리라곤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내 글을 적어 가면서 혹시나 젊은 층이 읽어주는 글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언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쓰는 언어 중에 어떤 것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잘 사용되지 않고 있어서, 유물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아서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우리더러 하지 말라고" 등에서와 같이 우리 세대는 충분히 알아듣지만, 자칫 젊은 세대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어휘와 조사들이 있다. 그런 어휘를 불쑥 적고 나서,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연신'을 '계속'으로 바꿀까, '우리더러'를 '우리에게'로 고쳐볼까? 이런 생각들이 들곤 한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다음 세대에 언어를 넘겨주는 전달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회 속에서 꾸준히 사용되어야 그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져간다. 사람들이 쓰지 않는 언어는 사전에는 기록되어 있으되, 죽은 운명과 다름없다.


그래서 내 안에 저장되어 있던 옛 것이 불쑥 튀어나오면 나오는 대로, 옛 것들을 꺼내어 그대로 사용해보려고 한다. 조금 오래돼서 헌 것 같고 참신하지 못한 감각일지언정, 도라지 방식대로 내 갈 길을 가기로 했다. 그래야 오래된 언어들이 사멸하지 않고, 지구 상에 마지막 한 잎처럼 숨을 붙이고 살아 있을 거 같다.


(2021년 10월 12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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