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과 우연

절망 끝에서 찾아온 희망

by 외딴별

인.연


어둠과 바람 속에서

흩날리는 꽃씨들을

결코 잡을 수가 없었다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햇살이 비치었다

그 속에서 꽃씨들은 빛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꽃씨들을 잡을 때마다

햇살은 밝아지고

꽃씨들은 더욱더 빛나고 있었다


비록 내가 저 꽃씨들을

모두 내 품에 담지 못하더라도

갑자기 어둠이 드리워

꽃씨를 담기 어려워져도


나는 꼭 만끽할 것이니라

꽃씨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실을

21.4.9


2020년 1월 10일, 고등학교 예비소집일, 앞으로의 고등학교 생활을 기대하면서 들뜬 마음에 행복해했던 이 날은 동시에 길고 긴 절망의 시작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입학식도 하지 못하고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과 먼저 다가가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던 나의 소극성은 나의 인생 목표인 '친구 사귀기'를 달성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1년 4월, 1년이라는 길고 긴 슬픔 끝에 우연한 희망이 나에게 찾아왔다.


3월 첫 등교개학 날, 사실 나는 인간관계를 완전히 포기하려고 했다. 크론병으로 온몸이 아픈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2학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 같은 반의 어느 얘가 밥을 다 먹었는데도 급식실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설마 재가 나를 기다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내가 밥을 다 먹고 일어서니 그 얘도 같이 일어섰고, 나는 그 얘와 같이 반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반까지 걸어가는 동안 둘 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얘에게 말도 걸며 적극적으로 다가갔지만 그 얘는 별말 없이 소극적이었고, 나는 '괜히 적극적으로 다가갔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체육시간, 나는 그 얘와 체육관에서 아무 말 없이 같이 있었다. 그때 뒤에서 어느 노랫소리가 들러왔고, 나는 이 노래의 가수가 헷갈려서 가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이 시절의 나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서서 무언가를 잘 못 물어보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물어보지 못하고 속으로 아쉬워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급식실 그 친구에게 다가가느라 좀 적극적인 상태였고, 그래서 어렵게 용기를 내 들려오는 노래의 가수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용기를 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로부터 2주 후, 3월 말의 어느 날, 학원 영어시간에서 쉬는 시간 동안 영어 선생님과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덕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여러 가수들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 선생님께서 나에게 "수민이는 누구 좋아하는 아이돌 없어?"라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이에 나는 얼떨결에 "잡덕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다른 학생들이 "네가 그런 고급 용어를 알다니!"라고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어제 같은 학원 영어 수업을 들었던 어느 얘가 나에게 '잡덕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비록 나는 갑작스러운 인사에 제대로 답하지는 못했지만 인사를 받았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


그 후 4월 첫 번째 등굣날는 자리를 바꿔 내가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앞자리를 선호하는 편이라 아쉬웠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얘가 나에게 말을 걸거나 먹을 것을 주기도 하면서 나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리고 며칠 후 학원 영어 수업 쉬는 시간에 나 빼고 모든 얘들이 밖으로 나가 한 학생이 가져온 스케이트 보드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나가서 같이 놀고 싶었지만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영어 선생님이 "수민이는 안 나가니? 얘들이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던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밖으로 나갔고, 나를 외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얘들은 나를 반겼다. 한편 학교에서 진행하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수업에서 나는 어렵게 용기를 내서 작가에 지원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스토리를 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아 다른 모둠원들과 활발히 교류하게 되면서 행복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4월이 되자 급식실에서 알게 된 그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친해졌고, 나는 그 얘와 대화를 하거나 체육시간에는 배드민턴을 치면서 행복하게 보냈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4월의 행복이라고 불렀다.


우연


바람 타고 날아가던 한 꽃씨가 떨어져

그곳에 꽃을 피운 것은 우연이었다

콘크리트에 갇혀 조용히 지내던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꽃을 피우는 방법을 몰랐던 나에게

네가 와준 것은 우연이었다


나에게 와준 이 우연들이

너무 급작스럽고 너무 많아

아무 말도 못 하고 혼란스러웠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행복을 일깨워준

우연들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 나에게 와준 모든 꽃씨들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다

감사를 선물해 주고 싶다

그들이 전해준 행복을

나도 다시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21.4.10


이때의 나는 내가 4월의 행복을 이루워내는데에는 나의 적극성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적극성, 즉 우연이 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우연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목표를 향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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