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희망
5월 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 수행평가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 하기도 바쁜데 여기에다가 수행평가도 꾸역꾸역 준비해야 해서 너무 힘들고 지쳤다. 앞서 수행평가를 끝내면 뒤이어 찾아오는 다음 수행평가를 보니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수행지옥에 빠진 것 같았다. 정말 열심히 수행평가를 준비했는데도 자정이 되기 전까지 끝내지 못하면서 빨리 끝내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수행평가는 계속 미뤄졌다.
컨베이어 인생
하루하루가 컨베이어에 놓여 있어
오늘 것을 다 못 끝내면 모든 것들이 미뤄지는
끝없는 고난들의 연속
일하다 지쳐
오늘 일을 포기해버리면
어제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
밀려버린 모든 일들을 해야 하니
오늘도 포기의 꿈을 접어야 하네
수없이 많은 컨베이어 위의 일들은
하면 할수록 속도는 줄어드는데
매일마다 할당된 일들은 늘어가네
컨베이어에 올려져
매일매일 돌아가는 것들이
한곳에 모여 쌓여버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여전히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21.5.18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친구 사귀기'라는 내 인생 목표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학교의 영화제작 수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학원의 영어 수업이었다. 우선 학교에서는 한 학기 동안 단편 영화를 만드는 수업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수업에서 큰 용기를 내서 우리 조의 작가팀이 되었다. (먼저 나서서 작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소심했던 나에게 무척이나 눈치 보이는 일이었기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대본이 단편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조원에게 감독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작가팀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상 감독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내 주된 역할은 수업 시간에 촬영할 분량의 대본을 만들어서 조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 수업 전날에 내가 대본을 만들어서 조원들에게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요청해도, 조원들은 수업 당일에 대본을 보고는 나에게 피드백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촬영 전에 대본을 완성해서 촬영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원들 입장에서는 촬영을 진행하면서 대본을 수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와 조원들의 입장이 갈리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다. 사실 이보다 큰 갈등은 전에 있었다. 연극 준비 초반, 나는 또 다른 작가팀 학생과 함께 정해진 주제에 따라 대략적인 줄거리와 설정을 정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한 줄거리와 설정을 다른 조원들에게 보여주니 내가 정한 줄거리와 설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열심히 정한 줄거리와 설정을 바꾸고 싶지 않았고, 내가 이 상황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나와 다른 조원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심히 정한 줄거리와 설정을 쉽게 바꾸기 싫어하는 나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너무 타협 없이 내 주장만 몰아붙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러한 나의 고집은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면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 수업을 내 인생 목표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곳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비록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지만, 이곳을 통해 진정으로 다른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 때문에 조원들과 갈등이 있긴 했지만, 이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한 토론장이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상대방이 싫어질 정도로 깊게 싸우지는 않았다. 또한 그러한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원들은 나에게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나의 주장 이야기하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제작 수업은 내가 다른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준 고마운 수업이었고, 그곳에서의 갈등을 통해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내 인생 목표에 희망을 가져다준 또 다른 곳인 학원 영어 수업에서는 또 다른 학생들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영어 수업은 나를 포함해서 5명이 들었는데, 나는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고, 맨 뒷자리에는 두 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뒷자리의 학생들은 수다쟁이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른쪽에 앉은 학생이 말이 많았는데, 그 얘의 이름이 우연찮게도 나와 같았다. 그들은 학원에서 나에게 말을 걸거나, 학교에서 인사를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주었다. 그리고 학원 영어 선생님도 조용한 나에게 말을 걸면서 관심을 보이거나 그 얘들과 친해지도록 도움을 주셨다. 하지만 소극적인 나는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먼저 다가와준 그 두 학생들 덕분에 나는 인생 목표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나는 영화 수업에서 같은 모둠인 학생을 우연히 만났다. 이미 영화 수업에서 여러 번 교류했었기 때문에 인사할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용기가 나진 않았고, 결국 나는 그 애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얘가 탄 버스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인사하지 못했다는 것에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것이 여전히 내가 가진 인간관계에서의 한계였다.
말하지 못한 한 마디
학교 끝난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던 같은 반 친구에게
말하지 못한 한 마디
항상
한 발짝 다가가기도 어려워
입안에 머금다 끝내 뱉지 못한 한 마디
떠나가는 버스 뒤로
말하지 못한 말들이
미련처럼 남아
내 뒤를 따라오고 있네
그렇게 오늘도
"안녕?"이라고 못하고
시작해버린 하루와
"잘 가!"라고 못하고
끝나버린 하루
2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