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다가오는 호의를 받지 못하는 나, 그리고 눈아픔
쌓여있는 수행평가로 고통받던 5월 말, 거의 한 학기 동안 준비한 수행평가의 최종 보고서 제출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제출 마감 며칠 전부터 열심히 최종 보고서 완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제출 기한을 넘겨서 완성하면서 수행 점수가 깎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제출 기한 때문에 감점이 된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그 충격은 컸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학교 수업은 온라인이었지만, 학교 동아리는 오프라인으로 도서관에 가야 되면서 나는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바로 학교 동아리를 하러 도서관에 가야 했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 갈 준비를 늦게 하면서 도서관에 정해진 시간보다 매우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동아리 선생님에게 혼났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 구경도 얼마 못하고 동아리 활동을 끝내야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갑자기 왼쪽 눈이 아프기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나는 학원에 가 영어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왼쪽 눈이 아파서 영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눈아픔 때문에 수업을 듣기 힘들면 그냥 선생님에게 말해 일찍 집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말하지 못했다.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눈아픔을 버티다가 집에 도착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의 21년 5월 말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힘들고 우울했다.
사실 21년 1학기는 여러 물리적인 아픔들이 나를 많이 괴롭혔다. 지난 2월에 크론병을 진단받은 이후, 3~4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배가 많이 아팠고, 제대로 의자에 앉아 공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고통이 2개월 동안 심하게 지속되다가 4월 말이 되니 다행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론병으로 인한 배아픔이 줄어드니 이제는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안구건조증으로 인한 눈아픔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눈아픔은 4월부터 시작되어 계속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동네 안과에서 안약을 받아 꾸준히 눈에 안약을 넣었지만 눈아픔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5월의 수행 지옥 속에서도 눈아픔은 여전했기 때문에 나는 눈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수행 준비 때문에 눈을 혹사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선 이야기의 배경인 5월 말도 이러한 눈아픔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나의 왼쪽 눈이 심하게 아팠던 것은 기존의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안구 건조증 때문에 눈이 아팠던 것과는 달랐다. 이때는 왼쪽 눈에 이물질이 생긴 것처럼 눈이 아팠었고, 실제로 거울을 보니 하얀색 실태래 같은 것이 내 눈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학교와 학원 때문에 안과에 갈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학원 끝나고 눈아픔 때문에 잠을 자고 일어나니 눈아픔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 6월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시국의 학교는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이 격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눈이 심하게 아팠던 지난주는 온라인 수업이었기 때문에 이번 주는 오프라인 수업이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영화 촬영 등으로 다른 학생들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오프라인 수업을 좋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교류 속에서도 제대로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속상하기도 했었다. 이 6월 첫 주도 마찬가지였다. 화요일 점심시간, 나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밥을 먹고 있던 도중, 멀리서 걸어오는 같은 영어학원 학생을 보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애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치, 수민이가 인사를 안 해주네"라고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하지만 정확히 듣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들어낸 목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후 점심을 다 먹고 교실도 돌아가는 길에 작년에 같은 반이었지만 교류가 거의 없었던 어느 얘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갑작스러움에 당황해서 그 얘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전에 그 얘가 인사했을 때에는 나도 인사를 했었다. 그래서 이때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 후 학교가 끝나고, 우산을 교실에 두고 와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반이자 같은 영화 촬영 모둠인 한 학생을 마주쳤다. 나는 그 얘에게 인사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가려고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 얘가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걸어 주었다. 그리고 그 얘가 먼저 인사를 해 줘서 행복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수요일 점심시간에는 내가 속한 도서부에서 하는 도서관 봉사활동이 있어서 도서관으로 갔다. 그리고 나와 같은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던 한 학생이 나에게 '늦어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였기 때문에 주변 소음으로 인해 그 얘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4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얘의 '늦어서 미안해'는 자신의 지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그 얘가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결국 이때의 나는 인사치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서툰 사람이었다.) 그 후 쉬는 시간에 같은 반이자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한 학생이 영어 발표 수행을 도와줄 수 있냐고 먼저 물어봐서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이 교류는 행복했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학원 영어 수업에서 다른 얘들이 열심히 떠들고 있을 때 나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슬픔 때문에 학원 영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목요일에는 전에도 이야기했었던 영화 제작 수업이 있었고, 스토리 때문에 싸우던 전과 다르게 원활하게 촬영을 했었다. 그리고 금요일 점심시간에는 또다시 같은 학원 학생을 보았지만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얘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렇게 나의 6월 첫째 주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준 호의에 행복하면서도, 내가 호의를 주지 못해 불행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마치 다른 학생들이 준 조약돌(호의)를 쌓아 돌탑을 만들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돌탑을 세워야 할텐데
사람들이 무심히 던진 조약돌들을
받아 탑을 쌓을 수가 없었다
잘 받은 조약돌도 있었지만
잘 못 받은 조약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항상 내 돌탑은 쉽게 무너졌다
계속해서 돌은 던져졌고
쌓지 못한 조약돌들이 바닥에 쌓여갔다
돌탑을 잘 쌓았을 때에는 행복했었지만
돌탑은 항상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리 쌓아도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 돌탑에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저 별은 빛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땅바닥에 앉아 있다
나도 언젠가 저 돌탑을 잘 쌓아
저 별 근처에 닿을 수 있을까
21.6.1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모르는
바람이 분다
어제도 오늘도
매일 다른 바람이 부는데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부는 이 바람이
살랑 바람이든 칼바람이든
일단 맞아보려고 한다
바람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버리더라도
일단 부딪쳐 보려고 한다
내일도 불어올 바람이
어디서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무더위 속 그늘이길 바라며
오늘도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2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