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아픔 때문에 망쳐버린 기말고사
'우여곡절 끝에 기말고사가 끝났지만 지금 나는 너무 허무하다. 눈아픔에 제대로 시험공부 하지도 못하고, 시험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1.6.25에 작성한 수필 중 일부-
기말고사 2주 전인 6월 둘째 주부터 기말고사를 본 6월 넷째 주까지 총 3주동안 나를 힘들게 한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둘째 주 평일에는 학원 영어 수업 시간에 공부해야 하는데 떠드는 학생들과 학원 선생님 때문에 슬펐다. 내가 슬펐던 이유는 떠드는 소리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들의 수다에 끼고 싶어도 끼지 못했기 때문이 컸다. 사실 학원 학생들과 학원 선생님은 예전부터 수업 시간에 종종 수다를 떨곤 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들의 수다에 끼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학원 선생님은 수다 도중에 나에게 대화 주제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내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주셨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에 호흥을 해주면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먼저 용기내서 대화에 참여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항생 학원 선생님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때는 학원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아서 서운했다. 그 후 주말이 되자 나는 한 달 전부터 밀린 학원 숙제를 하느라 주말을 다 썼다. 기말고사 직후에 슬픔에 빠졌던 때에 학원 공부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이때부터 밀리기 시작한 숙제를 주말내내 하느라 애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알레르기성 결막염 떄문에 눈이 아픈 와중에 이러한 눈아픔을 참으면서 숙제하느라 눈을 더욱 혹사시키고 말았다.
그렇게 겨우 숙제를 마치고 6월 셋째주가 되었다. 더 심한 눈아픔과 함께. 월요일 밤부터 시작된 이 눈아픔은 알레르기성 결막염 때문에 눈이 아팠던 것 이상으로 아팠다. 눈을 거의 뜨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학원 선생님이 이를 졸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었다. 이정도면 당장 안과에 달려가는 것이 맞았겠지만 이때의 나는 학교, 학원, 그리고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안과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화요일에는 눈을 거의 뜨지 못한 상태로 수행평가 발표를 했다. 그리고 이때가 시험 전주였기 떄문에 학교에서는 주로 수업 대신 자습 시간을 줘서 시험 공부 할 시간을 주곤 했다. 하지만 나는 눈아픔 때문에 이 자습시간에 제대로 시험 공부를 하지 못했다. 수요일 점심시간이 되자 더 이상 눈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전화로 상의해서 학교를 조퇴하고 안과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조퇴 허락을 받기 위해 점심도 먹지 않고 교무실 앞에서 담임 선생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극심한 눈아픔 속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담임 선생님은 교무실에 오시지 않았다. 결국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아 나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다음 수업을 들어야 했다. 다음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다시 교무실에 가니 이번에는 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계셔서 조퇴 허락을 받고 조퇴를 하고 안과에 갔다. 그리고 안과에서는 '하얀 실타래같은 이물질이 안구에 달라붙는 안구 질환'인 '실모양각막염'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안과에서 이 이물질을 제거하고 안약을 받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이 질환은 재발이 잦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밤 또 다시 실모양 각막염이 재발했다. 눈을 거의 뜰 수 없는 눈아픔 속에서 눈으로 책을 봐야 하는 시험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하던 나는 문뜩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ebs 강의를 열심히 듣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자습을 주로 보는 것에 의존했었다. 하지만 눈으로 잘 볼 수 없으니 귀로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범위에 맞는 강의를 찾아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막했던 기말고사 공부에 작은 빛이 생겼다.
그 후로도 여러번 실모양 각막염이 재발해 이를 제거하려 안과에 계속 갔었다. 그리고 기말고사 시작을 하루 앞둔 일요일에도 실모양 각막염이 재발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안과는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보다 멀리있는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안과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모양 각막염을 방지하는 보호 렌즈를 착용했다. 이 덕분에 그 다음 날인 기말고사 첫째 날 시험은 생각보다 잘 보았다. 하지만 실모양 각막염은 렌즈 덕분에 괜찮더라도 알레르기성 결막염은 여전히 심했다. 그래서 렌즈를 낀 상태에서 결막염 약을 넣어도 되는지 엄마를 통해 렌즈를 낀 병원에 전화하게 되었다. (이떄의 나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장소에 전화하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했기 때문에 대신 엄마에게 부탁했다.) 전화를 통해 병원에서 '렌즈 끼고 안약을 넣어도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이때의 나는 인터넷에서 본 '렌즈 위에 안약을 넣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안약을 넣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약을 넣지 말라는 렌즈는 아마도 콘텍트렌즈인 것 같다.) 하지만 안약을 넣지 않으니 눈이 너무 아파져서 결국 '치로용 렌즈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뒤늦게 안약을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안약을 넣지 않은 동안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심해졌고, 결국 나는 첫째 날을 제외한 둘쨋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시험을 모두 망쳤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나서 나는 중간고사 이후에 가지 못한 서울 근교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또다시 확진자가 늘어가서 결국 포기했다.
나에게 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는 고통 그 자체였다. 가장 중요한 시험 전주에 실모양 결막염 때문에 제대로 기말고사 공부를 하지 못했고, 시험 기간에는 나의 멍청함 때문에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심해져 시험 기간에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결국 거의 모든 기말고사를 망쳤다. 이는 마치 '공부'라는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커다란 벽이 막아선 것 같았다.
생이통(生是痛)
인생은 고통이다
열심히 살아가고자 해도
고통들이 내 발을 묶는다
이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해도
절대 벗겨지지 않는
완고한 속박이다
풀려도 다시 채워지는
굴레의 반복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족쇄가 오늘도
나를 괴롭게 만든다
그렇게
다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만 족쇄 속에 갇혀 있다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울부짖어보지만
아마 살아있는 동안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고통이다
21.6.25
벽 앞에서 눈을 감고
감긴 눈 속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뒤에서 사나운 맹수가
쫓아오는 것처럼
시간과 운명에 쫓기며
숨 가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벽이
나를 멈춰세웠다
그래서
맹수가 뒤에서 쫓아와도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감긴 눈 속에서
쉬지 않고 달려갔었던
지난날들의 주마등이 스쳐가는데
그때 벽이 나에게 꾸짖었다
‘넌 왜 멈추는 법을 모르냐’
25.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