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질투심을 느낄 때,
남의 세상이 팽창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때,
내 세상이 좁다는 걸 느꼈을 때,
지하철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나친 증오심을 품었을 때,
공공장소에서 목소리 큰 친구를 남몰래 부끄러워했을 때,
밀물처럼 묵직하고 거부할 수 없이 찾아드는
거대한 감정은 허무함이다.
포기가 쉽고 안주할 곳을 찾는 나는
지나친 자기연민과 과대망상에 시달렸으며
글이 내 생각을 잘 빗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글을 쓸 자격을 따지며
갈등하고 있다
나의 가장 은밀하고 섬세한 고통을
친밀한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망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와 같고
그걸 이해한다는 건 몇 광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교신하는 일이다
교신하기 위해서는,
중력을 거스르고 우주와 구분되는
거대한 장벽을 뚫고 공백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호는 다른 행성에 닿을 수도 있고 공백 중에
흩어져버릴 수도 있다
정성스레 보낸 신호가
끝끝내 거대한 대기권을 뚫고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그의 타오르는 내핵에 가 닿았을 때
공감대가 생기는 것이다
타인과 교감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환상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