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불안, 알랭 드 보통

'요즘 뭐해?'라는 질문이 불편한 청춘을 위한 진단서

by 최유정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맨 처음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 135p,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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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출판사:은행나무

[평점]

⭐⭐⭐⭐


취준생인 나에게 요즘 들어 가장 불편한 질문은 '요즘 뭐해?' 라는 질문이다. 간단하게 던지는 이 질문으로 상대방은 나를 파악하고 진단하게 된다. 이 질문에 '그냥 있어' 혹은 '취준하는 중이야' 라는 심심한 대답을 하게 되면, 나의 별점은 낮아지고 나의 지위와 가치 또한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경쟁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자아가 아직 성숙해지지 않은 10대 때부터 끊임없이 증명하고, 증명 받기를 원한다. 그건 우리가 불안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안은 왜 생기는가? 나의 삶을 쥐고 흔드는 이 강력한 공허를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마음이 심란한 시기에 만난 이 책은 나의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해주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저자는 불안이 생겨나는 원인은 우리가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먼저 설명한다.


사랑.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 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단으로서 -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15p, 사랑결핍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 21p, 사랑 결핍


결국 우리는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타인이 필요하지만, 타인의 평가 때문에 괴로워지는 아이러니에 빠지고 말았다. 타인이 나에게 확신을 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나에게 쉽게 웃어주지 않는다. 나에게 '웃어줄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우리가 쉽게 불안에 빠지는 이유는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준다면 이 불안은 끝날까? 그렇지 않다. 세상에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속물 근성, 기대, 불확실성 등 다양한 변수와 함께 등장하는 불안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다. 이러한 변수들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다. 예를 들어, 같은 능력치를 가졌다고 해도 우리 조상이 살던 시대와 비교했을 때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이 매우 높아졌다. 타인에게 요구하는 사랑의 크기가 커질 수록 타인을 만족시켜야 하는 기준치 역시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자본이 지배하는 현 시대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만족하기 힘들다. 심지어 저자는 능력주의에 대한 허상을 짚으며 '조직 내에서 성공한 사람은 능력이 좋다기 보단 여러 음침한 정치적 기술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꼬집는다.


조직의 피라미드를 성공적으로 기어 올라가는 등반가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고라기 보다는, 문명화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기 힘든 여러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에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다. - 123p, 불확실성


나를 포함한 취준생들은 능력주의의 허상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수없이 떨어지는 자소서와 면접에서 취준생들은 '내 능력이 부족해서'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류에도 못 붙고, 면접에서도 번번이 떨어진다고 자책하기 마련이다. 스펙을 올리려고 해봐도 주변에는 나보다 월등한 경쟁자들 뿐이고, 이런 환경에서 내 자존감은 맥없이 작아진다. 이렇게 잔인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려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247p, 정치


저자는 우선 우리가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차리라고 조언한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불안에 떨고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인간의 만성적인 결핍이 해결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러니 차라리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첫 번째 순서라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고 나면 우리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숨을 조여오는 불안 속에서 우리는 약간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 297p, 기독교


이는 우주와 비교했을 때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망망대해에 비해 우리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신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등을 상상한다면 '나를 인정해줘야 하는 타인조차'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인식하고 나면 사랑 받아야 한다는 욕망도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또한, 저자는 더 많은 지위를 획득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성공한 것이다(=남들의 존중을 얻을 수 있다)는 사회의 요구를 우리가 수용할지 저항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그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집단의 판단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 356p,보헤미아


즉,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 하찮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 남들이 나를 무시할 것 같다는 두려움은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와도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 불가능하지도 않고 혐오스럽지도 않다는 생각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 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박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떨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 306p, 기독교


평범한 삶, 그정도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아도, 사회에서 인정하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고 해도 하찮아지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대기업 공채를 준비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여담이지만, 대기업에서만 사람 대우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미신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노동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대학 시절 대외 활동과 인턴 등 챙길 수 있는 스펙을 챙기며 나름 치열하게 살았는데 이른바 '공채 시즌'에 더 치열하기 살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선, 나는 초대졸자로서 대기업이 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스펙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작년 초 개인적으로 큰 실패를 겪었는데, 그때 이후로 무한 경쟁 궤도에서 조금 벗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우선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그렇다면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더 큰 의문이 생겨났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사회가 정말 믿어도 되는 사회인가?


이제 막 달려나가야 하는 인생의 출발선에서 앞서나가기보다는 서성거리며 두려움에 질려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또, 말해주고 싶다. 내 탓이 아닌 불안 때문에 너무 많이 시달리지 말라고.


우리 모두 남이 주는 사랑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Defying gravity 하자!

https://youtu.be/6-67Q0xALtU?si=wjZ1oIqniGRGCjQF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요즘 내가 하는 생각과 주파수가 비슷해 무한 공감하며 읽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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