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어쩔티비
캐나다 BC주 고등학교 학기는
가을 학기(9월-1월) 겨울 학기(2월-6월)로 나뉜다.
영주권이 나온 게 1998년 4월이었으니
나는 10학년도 아니고 11학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내 친한 한국 친구들은
신촌쯤으로 모두 대학에 들어가
꽃띠 놀이를 하고 있는데
난 영주권 문제에 묶여 거의 1년을 백수 생활을 하고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조차 언제가 될지,
가능은 할지 묘연한 상황이 된 것이다.
상황이야 어쨌건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한국에서 그래도 전교 석차에서 놀았었는데
게다가 내 친구들은 다 대학생인데
난 고등학교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니.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캐나다에서 제일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내가 사는 BC주 고등학교 졸업장을
Dogwood Diploma라고 한다.
당시 그 졸업장은 약 80학점을 이수해야 받을 수 있었다.
그중 영어, 수학, 과학 사회는
꼭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들로
10/11/12학년에 포진해 있고
그 외 과목은 선택과목으로 아무거나 들으면 된다.
대학은 12학년 Academic Subject 4-5개를 평균 낸 점수로 당락이 결정된다.
사실 수학은 걱정이 없었다.
Math 11 진도를 반을 넘긴 상태에서 처음 들어갔지만
전부 100점 맞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영어로 되어 있는 문제라도
미적분을 풀다가 온 나에게
기본적인 함수, 삼각비, 도형문제는 너무나도 쉬웠다.
그 밖에 물리와 화학도
높은 점수 따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AP (Advanced Placement)까지
어렵지 않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영어.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정도의 영어 회화 수준이 가능한 정도.
하지만 나는 따지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졸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난 하루빨리 졸업을 해야 했다.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 카운셀러는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나에게 ESL (English as the Second Language)과목을 꼭 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크레딧도 없는 과목.
스캐쥴 상 그걸 들으면 내 졸업은 한 학기에 밀리게 되는 상황.
ESL이 아닌 English 11과목은 영어 회화가 아니라 “English Literature”, 즉, 소설, 에세이, 시를 포함한 전반적 영문학을 공부하는 과목.
어쨌든 나는 레귤러 과목을 듣겠다고 우겼다.
졸업과 대학 입학이 한학기를 밀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카운셀러도 쉽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민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자기 앞에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영어를 구사하는 동양 여자애가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우기자
본인 말을 안 듣고 영어 11을 그냥 들었다가
그걸 만약 fail 하면
페널티로 ESL을 다시 듣고 레귤러를 들어야 해서
대학교 가는 게 한 학기가 아니라 1년 그 이상이 미뤄질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 그건 으름장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똘끼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난 그 협박이 들리지 않았다.
그 협박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난 절박 했다.
난 무조건 패스할 거라고
제발 레귤러 과목으로 넣어 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결국 카운셀러는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렇게 난 한 학기를 거의 통째로
영어에만 매달리다시피 하여
딱 passing grade로
결국 English 11 학점을 따냈다.
너무나도 고생스럽게 English 11을 이수를 하고 나니
필수 과목이자 대학 입시에 중요한 English 12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즈음 Summer School이라는 걸 알게 됐다.
거의 5달을 시달려야 이수할 수 있는 걸
1과목을 선택해서 5주 만에 크레딧을 준다는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제도였다.
매일 매일 하루에 거의 4시간씩
컴팩트하게 수업이 진행되지만
English 11을 그 개고생을 하며 듣고 나니
그보다 더 어렵다는 12학년 영어를
학기 중에 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학기로 English 12를 신청하여 듣는데…
천운이었는가.
English 12를 맡은 선생님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같은
문학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괴짜” 선생님이셨다.
그동안 영어가 늘었는지 그래도 B는 받고 있었지만
캐나다 최고 좋은 대학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불안한 점수였다.
하루는 키팅(?) 선생님이
햄릿을 가르치시다가 혼자 햄릿에 취하셔서
irresistible offer, 거절할 수 없는 제안 하나를 내놓으셨다.
연극 햄릿에 나오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으로 시작하는 1장 반 분량의 독백과
비슷한 분량의 오필리아에 죽기 전 독백을
당장 다음날까지 다 외워서
반 앞에서 마치 정말 연극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한다면
점수 배당이 가장 높은 소설 파트를
시험을 재끼고 A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따지고 말고 할 게 없었다.
난 집에 오자마자 미친 듯이 연습을 했다.
정말 밤을 꼴딱 새워 연습을 했다.
연기를 해야 했으니 방에서 떠들면 안 될 것 같아
차고 안 차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연습을 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소설 파트에서 A를 따냈고
대학 입시 최대 난관이었던
English 12에 A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서울대 연고대라면
캐나다는
University of Toronto,
McGill University,
그리고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일 것이다.
당시 QS University World Ranking에 따르면
세계 1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McGill이 캐나다 탑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 밴쿠버엔 지금처럼
교육 컨설턴트나 입시 학원이 전무했다.
엄마 아빠는 이민 정착하느라 정신이 없어
나에게 입시에 대한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처지가 못됐다.
나는 11학년 말부터 웹사이트로 입시 정보를 알아내고 학교 카운셀러에게 질문을 하는 것으로 입시에 필요한 것들을 수집했다.
온라인으로였지만 대학 지원서를 내고, 성적표 및 관련 서류 보내기, 커버레터 쓰기 장학금 신청 등 그 모든 걸 내 힘으로 해 내는 수밖에 없었다.
1999년 겨울 즈음에 UT, McGill, UBC, Waterloo, 그리고 일단 동네 대학인 SFU까지 Early Admission 신청했다.
그즈음 고민이 있었다.
나는 동부 대학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었는데
엄빠는 비행기나 타야 하는 동부로 혼자 보내는 것을
영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걸 아는 나는 일단 SFU에 지원 한 사실은 숨겼다.
2000년 봄에 모든 동부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왜인지 UBC와 SFU가 합격 발표가 가장 늦었다.
동부 대학들 합격 소식은 이미 엄마 아빠도 알고 계시는 상황.
드디어 3월 중순 어느 날 UBC에서 합격통지서를 이메일로 받았다. 엄빠에겐 알리지 않았다.
동부에 가고 싶은 상황에 달갑지 않은 합격이었다.
나는 매일 메일 박스를 뒤졌다.
이메일로 합격 통지서를 받고 일주일 후
정식 합격통지서가 메일로 도착했고
나는 메일 박스 앞에서 그 합격 통지서를 박박 찢었다.
무슨 깡다구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난 엄마 아빠께 UBC는 아무래도 불합격이 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UT와 McGill 그리고 취업 잘 된다는 Waterloo공대에 붙었으니 그중에 하나에 Accept를 하루빨리 하고 싶다고 했다.
정착하느라 전후사정을 꿰뚫어 볼 에너지가 없었던 부모님은
“이미 성인 나이의 니가 지금 와서
우리가 가지 말란다고 가지 않을 것도 아니고,
후진 대학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니
니가 가고 싶은 대학으로 마음대로 가라”라고
어쩔 수 없는 허락을 해주셨다.
그렇게 2000년 가을에 난 McGill University, Science Department에 입학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다.
캐나다 고등학교를 들어간 지 딱 2년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