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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Feb 10. 2023

7. 미지근한 인간

득달같이 달려들어 취향을 탐색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것이, 가만히 앉아 내가 어떤 것에 이끌리며 살아왔는지 생각만 해도 나의 취향 한 두 가지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을 만들고 보내는 게 관건일 뿐이다.


다른 이와 만남을 가질 때 상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고 맞추려고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나?


학창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여러 가지를 해 볼 기회가 없었다며 변명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에 대한 무지를 덮을 변명거리가 없다.


새 학년에 빠짐없이 쓰던, 이제는 내가 쓰라고 나누어주는 자기소개서는 언제나 곤란의 대상이었다. 피할 수조차 없는 통과 의례였기에 꾸역꾸역 ‘취미’는 그나마 괜찮은 ‘음악 감상’으로, ‘특기’는 초등학생 때 배우다 작별인사한 ‘바이올린’으로, ‘꿈’은 당시에 멋져 보이는 것으로 아무거나 휘갈겨 해치우곤 했다.

본인의 색깔대로 쓱-쓱- 길게 적어 내려가는 친구들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들도 아무 말을 쓴 것일 수도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스스로의 취향을 한껏 잘 알고, 움직임과 말에 개성이 묻어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워지기 시작한 건 어른이 되고부터다. 공부했던 시기엔 “나 공부만 해서 그런 거 잘 몰라~”가 나름의 훈장으로 통용됐기에 별다른 미련이 없었다.


스물여섯, 나에 대해 대해 더 알고 싶다. 타인을 만나듯 내게 질문을 던진다. What is your 페이보릿..


좋아하는 음식은?

좋아하는 노래는?

좋아하는 책 장르는?

좋아하는 영화는?

내가 잘하는 것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나에게 맞는 휴식 방법은?

내가 선호하는 업무 방식은?

내가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이걸 다 모르겠냐고? 모르겠다. 이걸 다 모르는 게 나뿐이 아니길 소심하고 의기소침하게 바랄 뿐이다. 다들 언제 이런 것들을 찾고 자신을 자신의 색으로 색칠해 나가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머뭇거림 없이 정리되어 돌아오는 대답이 내심-사실, 대놓고-부럽다.


좋아하는 음식과 자신 있는 요리를 찾기 위해 채식 요리 학원을 등록해 매주 토요일마다 요리를 배웠다. 재미있는 건 그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작했지만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찾으려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찾았다. 학원에 오가는 길에 햇빛을 맞으며 강변을 넘실넘실 걷다가 ‘나에게 맞는 휴식’도 찾았다.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아닌 이 상태 그대로의 나 자체를 눈여겨보고 싶다. 알게 되는 것들을 그 어떤 외부 요소에도 흔들리게 두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을 해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뭐 좋아하세요?”

“관심사가 뭐예요?”


데이팅 앱을 뒤적이다 보면, 또는 어디에선가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면, 이 질문을 받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바로 멈칫한다.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본다. 왜 자꾸 이런 걸 묻고 그러는 거야.

뭐라고 말하지……?

'에... 글쎄요. 생각 안 해 봤는데요. 님은요?'

결국 질문의 방향을 돌려 차라리 듣는 쪽을 택한다.


이러다 보면 머지않아,

'상대가 채팅방을 삭제하였습니다.'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게 된다. 에잇. 애초에 차지도 않았던 빈자리를 저렇게 명료하게 말해주다니. 마음의 모서리가 느껴진다.


대화 상대를 흥미롭게 하는 사람이고 싶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다시 생각한다.


미지근한 나의 뿌리를 따라가 본다. 가족 구성원들도 대체로 중간 정도 세기의 미지근한 바람을 풍긴다. 그렇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없다. 웃기지 않아도 웃고, 웃겨도 웃지 않는다.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어느 무리에서 있어도 어울리고 고립된다.

반면 주관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들 말한다지. 웃길 때만 웃는 사람, 웃기지 않을 땐 웃지 않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보고만 있어도, 차갑거나 뜨겁거나 어둡거나 밝거나 세거나 부드러운 바람이 느껴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한 후 돌아오는 길에 종종 속으로 묻는다.

나도 당신처럼 나를 잘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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