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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Aug 11. 2023

있ㅅ는잔치2

그래서 변했나?

함평에서의 첫 이틀은 긴장 속에 있었다. 충분히 친해진 사람도 없고 그 공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판단받을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삶이 처음인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런 삶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런 삶'이라 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것. 게다가 혼자 와서 혼자 있는 사람은 나뿐이어서 불안한 마음이 일렁였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그곳을 간 것은 정말 용기 있는 선택이 맞다) '난 역시...'로 시작하고 무수히 많은 부정적 맺음말을 가진 낯설지 않은 마음이 들 뻔했다. 하지만 나는 오기 전 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도, 긴장해서 변을 누지 못해도(tmi) 자학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나를 봐 주자는 그 약속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고맙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줬다. 용기를 베풀어준 모두에게 감사를!




그곳에서의 워크숍은 자격증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내가 좀 잘 안다/한다 싶은 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식이었다. 뜨개질, 춤, 사진, 연극, 넥스트젠 소개, 레인보우게더링 경험 나눔, 녹색변태 등의 워크숍이 있었다. 다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만 참여하고 참여하지 않는 경우엔 그냥 자유시간이었다. 나는 사진과 연극 워크숍에 갔다.


'하고 싶은 대로' 참여하거나 빠져도 아무도 눈치 주거나 보지 않는 것이 큰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늦거나 중간에 떠나도 문제시되지 않았다. '해야 하는 것'들이 제거되니까 내 마음이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다.(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교시마다 '해야 하는 것'과 전전긍긍하는 교실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급 반성타임)


녹색변태 워크숍은 가고 싶었지만 땔감을 만드는 시간과 겹쳤는데 땔감 만들기를 더 하고 싶어서 나무를 팼다. 나무를 패는 것이 느려도 "내가 대신할게"라고 말하는 사람 없이 느린 대로 돌아가며 했다.


처음엔 여유로운 시간 개념에 당혹스럽기도 했다. 밥 먹고 2시간 후에 만나요~ 이런 식이었다. 네?? 2시간 동안 전 뭘 하라고요! 그래서 스케줄이 더 빡빡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 무리의 사람들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쓰윽- 앉았다. 숨참고 러브다이브처럼 용기 냈다. 그러다 20분 후 노래 공연팀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오픈마이크 날에 공연을 하지는 못했지만 낯선 사람으로서 다가가서 환영받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관계를 맺은 경험은 정말 낭만적인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우리는 기타를 치며 정우의 노래들과 <생각은 자유>를 불렀다.

 

생각은 자유예요 상상해 봐요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도 없는

존 레넌의 노래처럼 꿈을 꿀래요

몽상일지라도 꿈을 꿀래요

밥 딜런의 노래처럼 시를 쓸래요

바람에 날려갈 시를 쓸래요


그때부터인가, 대화를 하고 싶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지면서 긴장이 덜해졌다. 환대의 경험들이 잇따르다 보니 대학교 2학년 이후로 인사도 없이 쏙 사라져 가물가물한 내 속의 외향성이 한 발씩 나왔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기를 못 펴고 있던 거였다. 맞아, 이렇게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했었지. 맞아, 이렇게 사람과 대화하기를 좋아했어. 안녕, 안녕, 크게 인사하면 기분이 이렇게 좋구나. 야호, 즐겁구나! 나를 보호한답시고 타인이 보이지도 않게 두텁게 세웠던 경계가 얇아진 것 같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두껍고 날카로워졌었을까.


이렇게 있ㅅ는잔치 속에서 나는 - '관계(친구/이웃/공동체)'와 '내 속도대로 인정받는' - 원하던 경험을 모두 할 수 있었다.




잔치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후에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내뱉었는데, 그 말이 내게서 나오는 것이 너무 낯설어서 소름이 돋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억울함이나 거북함 없이 그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감각이 온전히 느껴지고 숨이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어진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내 속도로 돌아올 수 있다. 겉으로 티가 나진 않지만 내 속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난 거다. 일종의 화학반응이어서 환원되지 않는 종류면 좋겠다.


이렇게 나는 어찌 보면 목표했던 실험을 마친 거다. 나는 '편안한 관계(친구/이웃/공동체)'과 '내 속도'가 있으면 중심을 잡는다. 이걸 알게 됐으니 패닉이 가까웠을 때 조절 할 힘을 얻은 셈이다.


우울과 불안과 무기력아, 잘 봐. 통제권이 조금은 내게 넘어왔어.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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