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안전함의 정도에 따라 대답이 갈리는 거야. 유투브에 비건을 검색해봤어? 오해와 비난 또는 거리 두기로 댓글창이 점철되어 있어. 당신이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내 카드도 당장 다 보여주지 않는 거야.
여기가 안전한 곳인가보다, 느끼면 비로소 내가 진실된 이야기를 풀어 놓을 거야. 예전에, 옛날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미 우리의 관계는 증명된 셈이지,
그럼 반대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어떻게 하냐고?
음... 일단 웃어.
웃으면서 이 사람에게 교란을 일으킬 한 마디를 찾으려고 용을 쓰지. 내 말에 주의를 집중해줄 짧디 짧은 시간 동안 이 사람의 생각이 변화하기는 어렵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는 작은 금을 만들 단순하고 강한 말을 찾아.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서요.
고통을 가하고 죽일 만큼 먹고 싶지는 않아요.
강아지, 고양이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한 방'을 찾는 건 내가 어떤 '한 방'이 만들어낸 금에 의해 바뀌었기 때문이지.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에서 비로소 이야기하는 내게 온 한 방.
언제나 “전에, 내게 한 인도인 친구가 있었어.”로 옛이야기를 풀듯 시작하는 작은 이야기.
그와 나는 각자의 나라에 살아서 만날 순 없었지만 매일같이 수다를 떨던 사이였는데, 그 친구는 비건이었어.
언제부터 비건이었냐고 물으니, 네 살부터 스스로 비건이 되기로 선택했다는 거야.
치즈향 가루를 덮은 치킨을 좋아했던 스물 셋의 나는 놀라서 어떻게 그렇게 어릴 때부터 비건일 수 있었느냐 물었어.
“나는 동물을 좋아해.(I like animals.)”
그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답했어.
어라?
난 오래 생각을 했어.
삼켜버린 거지, 빨간 알약을.
동물에 대한 태도가 모순적이었구나.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개와 고양이라는, 소수의 종만을 좋아한 것이었구나.
또 폭력에 대한 태도도 모순적이었구나.
동물의 신체와 감정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것을 소비하면서 입으로 비폭력과 평화를 운운했구나.
그렇게, 그 대화 이후로 돼지와 소와 새를 먹기를 멈췄어.
생산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남자 병아리가 태어나자마자 모두 죽임 당한다는 것과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여성 소를 강제 임신시키고 아이와 분리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닭알과 소젖을 먹기도 멈췄어. 동물이 대우받았으면 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머니까.
생산성보다 삶이 가치로운 곳에서 살아가고 싶으니까.
I like animals.
난 말해 놓고도 "근데 다들 이유는 달라.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라며 부가설명을 덧붙이곤 해. 상대가 그들이 아는 유일한 비건인 나를 보고 비건은 동물 애호가들이구나하며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인 거야.
난 비거니즘도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운동을 하려면 사랑이 필요해. 하지안 오해는 마.
동물을 사랑해서 비건이구나? 하는 말은 ‘여자를 사랑하니까 페미니스트구나?’, ‘장애인을 사랑하니까 장애인권운동을 하는구나?’처럼 인과관계를 잘못 파악한 말일 뿐. 대상을 사랑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야. 마땅히 삶으로 인정되어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시스템이 제도가 때로는 편견이 장애물이 되길래 운동을 하는 것이야.
사랑하게 되는 건, 권리와 자유고,차별 받지 않는 세상과안전함이야. 그리고 이를 위해 함께 뜨거워지는 동료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