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피 성향이 짙다. 불편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들이 자주 밀리고, 그중에서도 관계가 삐걱대는 사람과 협업해야 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속이 안 좋다. 내가 일에 서툴면, 그 일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지금도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과의 애정 관계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고개를 들면 냅다 도망간다. 나를 지나치게 좋게 봤다가 실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서일까. 누군가 나를 지나치게 좋게 본다는 느낌을 받으면 마음이 저 멀리 줄행랑치고 또다시 외로워한다.
나는 스스로 가끔 자해를 한다. 고등학생 때 기초가 부족했던 탓에 수학 점수가 오르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선생이 놀리는 어조의 말을 하자 학원에서 스스로 내 뺨을 때린 것이 시작이었다. 직장 생활에서도 1학기엔 날 선 말들을 들었을 때나 내가 나를 실망시켜서 궁지에 몰린 듯한 심리적 압박 속에 있으면 학생들이 하교한 후 화장실 칸 속으로 얼른 들어가 응징을 가하곤 했다. 나를 때리지 않기 위해서는 올라가는 팔을 껴안는 자세로 잡고 정신을 집중하고 반복해 말해야 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비건과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후로는 쓰레기를 왕창 만들거나 동물성 생크림을 (쳐) 퍼먹으면서 정신적 자해를 하기도 한다. 내 관심사 밖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반응하기가 어렵고 대화를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모르겠으며 눈을 마주치는 데 큰 의지가 필요해서 혼자가 편할 때가 많다. 간이 자폐증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나는 또 아주아주 혐오적이며 차별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나와 타인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아주 까다롭고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쿨한 척하는데 민망해한다. 성기 이름을 적거나 말한 적도 거의 없다. 그중 무엇이면서 레즈비언이나 게이라는 단어도 말하기 어색해한다. 그러면서도 검열 없는 글을 쓰고 싶다. 성교육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아무도 나에게 섹스가 무엇인지 묻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하트를 받는 것에 집착한다. 많이 모이지 않으면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고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며 우울해한다. 하지만 대체로 많이 모이지 않는다.
나는 콜포비아가 있다. 반응 속도가 느려 어떤 말을 듣고 즉각적으로 답하기가 어렵다. 듣고, 의미를 파악하고, 적절한 답을 내놓는 데 걸리는 시간이 주변 사람들보다 길다. 그래서 빠른 템포로 이야기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의 대화는 압박 면접처럼 숨 넘어가듯 위태롭다. 제바알 모오두가 느으리게 마알하며언 좋게엤다아는 사앙상으을 하안다아. 아니면 최소한 충분히 기다려주기라도 했으면. 전화는 안전한 시간과 공간에서, 편안한 심리상태를 탑재하고 있는 최상의 상태에서만 주로 응답한다. 꼭 받아야 하는 전화는 뛰어올라 전화를 건 사람을 덮치는 호랑이를 상상하며 전화에 ‘덤벼든다’.
‘우프’라는 단체에서 만든 매거진 [without frame!] vol.2 <나의 힘은 쓰레기통이다>를 읽고 내가 나에 대해 존나게 싫어하는 모습들까지 귀여워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졌다.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고 보니 그렇게 많지도 않다. 귀여워할 수 있을까-
내게 있지만 이상하고 별나고 소속되는 데 도통 방해가 된다 싶은 특성들. 이것도 나는 퀴어성이라 해석한다. 성소수자들이 혐오자들의 언어를 뺏어 자랑스럽게 붙인 이름 ‘퀴어’의 원뜻은 ‘이상함’이니까. 다른 이의 퀴어성도 궁금해진다. 다들 스스로 무엇이 별나다 생각하며 꾹 가린 채 살아갈까. 또 즐거운 상상을 한다. 내가 매거진을 만든다면? 모두의 퀴어성을 주제로 모든 인간들의 형형색색 별난 점을 개봉박두하는 매거진을 만들리. 옛 또는 새 친구처럼 물으며 들으며 기록한 후 인터뷰이의 선호에 따라 기억하거나 잊어버리리. 우린 다 이상하니 위안이 되는, 외로워서 버거웠더라면 보편화하는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