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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Mar 19. 2023

어쩌다 교사

먼지 덮인 꿈을 들춰보자

장래희망이 교사인 적은 없었다. 쓰리 잡을 꿈 꿨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매년 ‘꿈’이라는 항목-실질적으로는 ‘장래희망’-을 적어 제출하거나 발표했지만, 교사는 없었다.

그 많던 싱아와 함께, 꿈들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먼지 쌓인 꿈들을 다시 들춰봤을 때 내 생각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어쩌다 교사가 되어 있을까.



1. 비인간동물과 함께하고팠던


 일요일 아침마다 ‘동물농장’ 방송을 챙겨 보는 아이였다. 책 ‘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가 떨어질 때까지 넘겨보던 아이였다. 비인간동물과 만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정해진 직업들 중에서 생각하려 하다 보니 별 게 없었다. 훈련하거나, 치료하거나. 하지만 동물권을 알게 된 후로는 인간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고 통제하는 ‘조련’을 직업으로 삼는 건 원하지 않는다. 대신, 동물이 스스로의 선에 따라 제 삶을 사는 데(동물해방) 일조하고 싶어졌다.


 도망치거나 구조된 동물들은 아파도 치료를 받기 어려우며 치유할 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학대당하고 다쳐서 취약한데 구조자가 여유롭게 치료비를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은 드물다. 돌볼 시간을 내야 하므로 직장과 병행하는 데 제약이 있다. 수입이 적거나 비정기적이다. 게다가 소, 돼지, 닭 등 ‘축산 동물’로 분류되는 동물종이라면, 전염병이 돌았을 때 검사 결과에 따라 살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치료를 하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이유다.


 전염병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죽임을 당하니 아파도 검사를 받지 않는 게 사는 방법이다. 비인간동물이 인간이 정해둔 목적 없이 스스로의 삶을 사는 생추어리가 확장하려면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처럼 ‘동수’(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수의사들)가 절실하다. ‘귀여워서’, ‘보기 좋아서’ 사람에게 선택된 소수의 동물들 외 설 곳 없는 동물은 모두 사각지대의 동물들이다. 법이 죽이라는데 살리는, 범법을 기꺼이 무릅쓰는 의사가 있어야 그들이 고통에서부터 벗어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정 없거나 적다면, 되어야 한다. 사실 아직 놓지 못한 방향이다. 갈수록 마음이 더 크게 동한다.


동물권리장전(로즈법)


 2. 빈곤 종식?


 중학교 2학년 무렵 재밌게도 갑자기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 꽂혀 SDGs 덕질을 했었다. 그때의 나는 유엔에 들어가서 ‘빈곤 종식’에 힘쓰고 싶었다. 영어가 좋았으며 특히 ‘빈곤을 종식’한다는 표현이 말끔하고 자신 있어 보여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도 의식주와 직결되는 절대적 빈곤은 겪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빈곤하다고 꼭 나쁜 건 아님을 살면서 알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 꿈을 물으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이 거지야,’라는 말은 교실 속에서 욕으로 쓰인다. 이상하다.


 가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무한한 발전과 성장을 찬양하게 한다. 또 그렇게 커진 성장주의는 다시 빈곤 혐오를 심화한다. 빈곤이 무슨 절멸해야 하는 괴물인 양 말이다. 성장에 대한 찬양과 빈곤에 대한 혐오가 괴물이다. 이 괴물은 지 맘대로 ‘정상적(이상적)’인 인간상-(일단 인간이고) 사지가 달렸으며 아이큐가 높고 정신이 온전하며 귀가 들리고 눈도 보이고 말도 하고 손가락/발가락이 열 개이고 남성이고 이성애자고 연애를 잘하다가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하는데 그전에 인서울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가서 정기적인 수입이 있으며 아이가 있지만 아이로 인해 육아휴직을 쓰거나 경력이 단절되지는 않으며 아이도 시스젠더 이성애자 비장애인이고 계속 일하면서 타이밍 좋게 승진하고 성취하다가 손녀손자를 보는 인간, 아 그리고 잡식-을 만들어놓고 결코 소수가 아닌 자들을 약자로 소수자로 내몬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개발을 하고서는 부끄러워하기보다 자랑스러워한다.


 ‘빈곤 종식’을 무엇으로 바꾸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종식’이라는 말이 상한 국물처럼 더 이상 말끔하고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못 하고, 포기하고, 느리게 하고, 그래도 괜찮고, 취할 땐 숙고하고, 나누면 좋겠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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