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ing. Still questioning.
질문을 던지는 중. 알아가는 중.
나의 성적지향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전제들로 연역을 통해 결론을 내리던 때가 있었다.
대전제: 여자는 남자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다.
소전제: 나는 여자다.
결론: 그러므로 나도 남자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연역은 전제가 참이 아닐 경우 결론도 거짓이 될 수 있는, 그래서 자칫 모든 게 엎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도구다. 삼단논법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던 강둑에 작은 구멍이 나기 시작한 건 열네 살 무렵이었다. 대전제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인생 처음으로 대전제에 어긋난 자, 이성애자가 아닌 자를 ‘인지’ 한 것이다. (처음 ‘본’ 것은 아닐 거다.) 그녀는 바로 R이었다.
어린 나이에 기숙사에서 살게 된 나는 엄마처럼 애착 관계를 맺을 존재가 필요했고 그 역할은 매일 아침 안부를 묻고 매일 밤 불을 껐는지 확인하는 기숙사 부사감 R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자 문제로 R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갑작스럽고 낯선 이별의 과정 속에서 그녀의 자취를 찾고 싶었던 나는 당시 널리 이용되던 SNS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R과 한 여자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서로 가깝고 또 행복해 보였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R에겐 분명 비자 문제 외에도 본국으로 돌아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진첩에 들어가 사진을 구경할수록 두 사람은 자매 관계가 아니었고, 친구 관계가 아니었다.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우다 관계 사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관계는 ‘애인’이었다. R은 내가 안 첫 번째 레즈비언이었다.
둑에 자그마하게 뚫린 구멍은 다시 메꿔질 수가 없다. 우주 만물은 엔트로피가 커지는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기에. 둑의 구멍은 계속해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사랑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사랑스러웠다. 눈에 주름을 만들고 소리 내어 웃는 모습도, 상체를 흔들며 큰 보폭으로 걷는 모습도, 양 쪽의 바지가 서로 슥슥 쓸리는 소리도 심장을 뛰게 했다. 귀엽다며 얼굴에 열을 내며 말하고, 허리를 껴안고, 머리카락과 눈썹을 만지고 싶었다. 고개를 숙이고 공부를 하다가도 기척이 들리면 오뚝이처럼 기웃거리며 그녀일까 확인하기 일쑤였다. 그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녀가 내비치는 모든 움직임과 언어와 웃음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중한 마음을 이어가거나 혹은 절제하지 못했다. 어떤 마음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수년이 지난 후, 마침내 “나는 어떤 성별을 좋아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만큼 '교육받은' 시점이 왔을 때,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지 못하고 나는 이 마음을 기어이 기억해 냈다.
한 여성을 향했던 이 마음에 이름을 붙이기는 참 어려웠다. 두 양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 마음의 이름을 찾아주는 순간 나의 중요한 한 부분이 바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답은 정해져 있었으므로 결국 눈물겹게 정의를 내렸다.
늦게 알아봐서 미안해. 헤테로보다 조금 더 고단한 사랑을 하겠구나.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러니한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꼈다. 당사자의 목소리에는 차별에 대항할 강한 힘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제 막 당사자가 되었기에 기뻤다.
나는 생각한다. 다른 종의 동물들도 약 10%는 동성애를 하는 지구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스스로가 특정 성별에게만 끌리는 사람이라고 비약 없이 단정 지을 수 있는가? 귀납은 단 하나의 예외로도 무너져 내린다는 허점이 있잖은가?
나는 또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성애든 동성애든 양성애든 범성애든 무성애든 내가 나열하지 못 한 그 어떤 성적지향이든 결국 성적지향은 그 몸의 주인이 정의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성 정지향은 아직 열려 있다. 그리고 쭉 열려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펜을 들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오늘도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에 "애인이요?"로 되물으며 답을 한다. 더 많은 ( )성애자들이 함께 그래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