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을' 되고, '을'이 '갑'되는 우리 인생사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by 김문선 노무사

외국어 학원에서 강사를 하던 때,

제니라는 동료가 있었다.


제니는 스물세 살로 어린 나이만큼

통통 튀고 개성도 강했는데

능력은 나이 상관없이 상위 몇 프로 안에 들었다.


어느 날, 제니가 말했다.

"쌤! 나 요즘 다니엘이랑 사귀고 있어요."

제니의 눈은 반짝이고,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었는데

누가봐도 사랑에 빠져있구나 싶은 그런 얼굴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갑과 을이' 있다는데,

제니는 영락없는 '을'같았다.


그런 제니에게 나는 다니엘만은 안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니엘은 불과 일주일 전에 내게 만나자고 했었고,

그 전날에는 다른 한국인 선생님에게 추파를 던졌어! 라는 말을 하기에는 그녀의 눈빛이 너무 해맑고 반짝였기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니엘은 곧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귀국하기 전에 한국여자 한번 만나보자고 마음먹고

거의 모든 한국여자 선생님들에게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나랑 사귀자고 들이대고 있었다.


제니가 상처받을까 걱정이 된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니, 다니엘이 곧 돌아가는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알고 만나는건데요!

요즘 너무 재밌어요, 다니엘과 너무 잘 맞아요!"


제니가 모험적이고 용감하고 재밌는 성격이라는 건 알지만

다니엘이 떠나고 혼자 남을 제니가 감당해야할 슬픔과

이용당했다는 괴로움과

그럴줄알았다는 뒷담화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한 걱정이 되었다.


곧, 예정대로 다니엘은 떠났고,

떠나면서 제니에게 이별을 고했다.


제니는 완전 상처받았는데

잊으려는듯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가도

보통 사람들이 그러듯이

슬픔을 잊으려고

술도 마시고

울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소리도 지르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니는 새로운 결심을 한듯 했는데

열심히 피부관리를 받고

운동에도 몰두 했다.


다니엘에 대한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준비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겠지싶어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제니는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 간 제니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제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쌤, 우리 만나요!"

한국에 들어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우린그날 바로 만났다.

"나, 결혼해요!"

"어~~?????!! 어떻게 된거야!! 진짜!!!누구랑!!!"

"다니엘!!!"

"뭐~~~~~어~~~~~~????!!! 그 다니엘~~?!"

"네!!! 그 다니엘!!!!!"


알고 보니,

제니는 호주가기 전에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컴플렉스였던 피부도 깨끗하게 만들고

몸매도 더 아름답게 가꿔서

능력있는 멋진 여성으로 다니엘 앞에 나타나


"니가 놓친 여자는 이렇게 예쁘고 멋진 사람이다!!"

라고 느끼게 해주겠다고.


호주에서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D-Day였던지

제니는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다니엘에게 곧 미국가니 그 날 보자! 고 연락을 한 것이다.


공항에 나온 다니엘은

제니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다니엘도 미국으로 돌아온 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제니를 잊을 수 없었다고

너무 너무 사랑한다고, 그렇게 두고와서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었단다.


그리고 곧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제니는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편도만 끊었다고 했다.

왜냐면 그 다음일을 모르겠고,

모아놓은 돈도 다 써서 없었기 때문에...


하지민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끊을 필요가 없었다!


알고보니 다니엘의 부모님은 의사였고

잘 사는 집 아들래미에 석사마치고

누구나 다 아는 좋은 회사 취직한 상황이었다.


제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연신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니엘이 그런 숨겨진 보물같은 남자였다니~!!'


사랑을 쟁취하고 '갑'의 자리를 탈환하며,

행복한 결말을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금의환향한 제니를 보며,


그때, 뒷담화를 했던 그 사람들에게 당장 알려주고 싶었다.


생각없이 만나다가 뻔한 일을 당한 것이라는,

상처받는 건 제니뿐이라는,

그런 이야기들은 그냥,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나도 제니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제니,

사랑은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깊이 깨닫게 된 다니엘.


갑과 을의 관계는 완전히 뒤집혔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는게지..


우리는 생활하면서,

그 순간의 결과에 울고 웃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음을,

또는,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그런 일 중에 하나다.


슬픔과 좌절과 분노를 경험하지만

그것들을 이겨낸 후에

분명 강해지고, 단단해지고, 현명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 좌절감을 느꼈다면,

잘 나가는 동료나 친구나 후배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면,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면 좋겠다.

나를 믿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라고.


Bravo, my life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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