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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선 노무사 May 21. 2021

직장인에게 입덧이란

임산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드라마를 보면 시댁이나 친정에 같이 밥을 먹으러 간 여자배우가 음식을 보고는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예쁘게 "웁" 소리를 내며 입을 가리고 화장실을 잠시 다녀옴으로써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주곤 한다.


그런 드라마가...

입덧이라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고 다소 귀여운 것이고

금방 끝나는 것이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나의 입덧은 결코 쉽고 귀엽고 금방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먼저, 나의 입덧은 "웁"이 아니라 "웨에에에엑"이었다.

몸 속에 물한방울이라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 같이

하루 종일 이어지다가 위액을 넘기다가

피를 토했다.


먹은게 있건 없건 계속되었고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구역질에

눈물, 콧물에, 얼굴의 핏줄이 터져서

한 번 토를 할 때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번 했다고 봐주지 않고

하루에 7,8번 정도 계속었다. 

나중에는 입덧약을 먹어서 3회  정도로 줄었지만 

정말 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런 와중에 수시로 미팅에도 참석하고

강원도로 운전해서 출장도 가고 외부일정을 도맡아 했다.


그 당시, 나의 직장에서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대표님은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남자분들로

자녀가 없거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었는데

고시 준비하거나 취업준비하고 있었

직원은 나이가 많이 어렸다.


전 직장의 상사인 박상무님이

며느리를 보고 그 며느리가 손주를 낳았을 때

비로소 임신한 여직원을 배려하셨던 기억이 있던 나는

이 조직에서 임산부로써 배려를 받기는 글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직감은 슬프게도 맞았다.


한 번은 입덧이 절정이라

하루 휴가를 쓰고 집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었는데

대표님 한분이 전화를 하셨다.


"김노무사, 잘 쉬고 있지.

H회사에서 의견서 좀 빨리 달라고 왔네?

담당자랑 통화좀 하고 처리좀 해요. 잘 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H회사의 담당자와 통화를 했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가 입덧할 때 기어다녔다고 했는데

왜 그런건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도 화장실에서 기어 나왔으니까.


7개월까지 이어진 나의 토덧이후

먹는 족족 살이 되고 붓기가 되었던 것 같다.

35kg이나 늘어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토를 안한다는게 너무나도 행복했다.


옛날에는 어떻게 애 열을 낳았을까,

밭에서 일하다 애낳았다는게, 이게 가능이나 한 것인가?!

얼마나 대단하면서도 슬픈 일인가,

울엄마는 어떻게 애 넷을 막달까지

입덧을 하면서 낳으셨을까...


이 모든게 마음시리게 와닿았다.


임신기간에 임산부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임산부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있을뿐더러

어디가 다쳐도 엑스레이조차 찍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신 중에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동승자만 치료를 받고

나는 그냥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왜 의사선생님이 운전하지 말라고 했는지

깊은 깨달음이 왔었다.


임신기간이 힘들지만

회사에 다닐 때, 조직의 구성원에게

이해와 배려막연히 기대할 수는 없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모른다.


그러니 법으로 임산부를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늘려서

직원의 임신이나 출산이

동료나 상사가 한숨 쉴 일이 아니게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관련 법들은 처음부터 실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서 점점 보완에 보완을 거듭하다보니

가장 개정이 많은 규정 중에 하나다.


그래도 수많은 개정과 지원제도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점점 상황은 좋아지겠지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배가 나온 임산부에게는

대중교통의 핑크자리는 양보해 주었으면 한다.


임신 8개월에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핑크색의 임산부자리에 20대 남자분과

중년의 아주머니가 각각 앉아서 나를 못 본체를 하길래

그냥 맨 뒷칸에서 등을 기대고 서서 갔던 기억이 있다.

많은 분들이 배려를 할텐데 하필 그때는 그랬다.


그 이후에도 간혹 지하철을 탈 때 보면

딱봐도 임산부아닌 사람들이 앉아있는걸 종종 보곤 했다.


임신과 출산은 이제는 더이상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구절벽이 시작된 우리나라의 국가적 차원의 문제다.


제도의 문제는 지금 당장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하더라도 개인의 작은 배려 하나가 큰 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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