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맏이 1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자 Sep 21. 2023

맏이 23. 충주에서 추석을

북진 또 북진


이런 감격스런 진격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주야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우리는 진격의 쾌감을 맛보았다. 그동안 숨어있던 주민들이 국군의 수복 소식을 듣고 눈물의 환영과 함께 온 천지가 환희의 도가니였다. 국도 길가의 부락을 지날 때마다 만세 소리는 이어졌고 감격스런 순간순간으로 어느새 우리는 충주 목계까지 왔다.

목계에 와서 강에다 아라이꼬시 (차량 통과를 위하여 가마니로)를 만들었다. 가마니는 인근 면사무소에 가서 징발했다. 후속 부대가 속속 강을 건넜다. 이곳에서도 주민들의 환영은 대단했고 농악대가 나와 풍장 소리, 북소리, 장구 소리로 완전 축제 분위기였는데 알고 보니 이날이 바로 추석이라고 했다. 날이 가는 것도 모르고 지낸 우리가 아닌가. 논의 벼 이삭도 누렇게 익어간다. 내일의 진격을 상상하며 오랜만에 푹 쉬었다.

진격은 계속되었다. 여전히 우리 공병부대는 최선발대였고 진격의 감동을 제일 먼저 맛보는 행운을 가지면서 질풍 같은 진격이다. 지뢰의 장애물은 전혀 없었고 파괴된 교량의 응급 복구작업이 우리의 기력을 소모시켰으나 그때그때 일을 추진했다. 이윽고 원주에 도착했다.     

그날 밤 인민군의 습격을 받았다. 밤중에 별안간 다발총, 박격포 소리가 요란하고 포탄마저 터진다. 밤중이라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무척 당황했는데 그것은 순간적으로 끝나버렸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북으로 도주하는 패잔병들의 원주 시내 통과 작전이었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은 원주시 남쪽 산에서 북으로 도주하기 위한 습격이었던 것이다. 병력은 얼마인지 알 수 없었으나 꽤 많은 골수 인민군의 집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려했던 패잔병의 활동이 이런 상황으로 전개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진격, 진격으로 충천했던 우리의 사기는 여전했다. 그러나 인민군의 주력은 순식간에 북쪽으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 후부터 우리는 방심은 금물이고 특히 야간 경계를 엄중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소동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북진은 신났다. 이제 인민군 패잔병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점차 없어졌다. 각 지역마다 수복한 주민들이 자위를 위하여 노획한 무기 등으로 무장하고 국군에 협조하면서 패잔병과 싸우기까지 하는 바람에 감히 큰길에는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는 도중에 횡성에 들렀다. 이곳은 인민군의 야전병원이 있었던 곳으로 이미 병원은 철수하고 없었지만, 인근 민가에는 후송하지 못한 중환자들이 집집에 분산 수용 아닌 방치되고 있었다. 그 수는 수십 명이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고 기동은 고사하고 눕는 것조차 괴로운 그 모습이란…….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는지 약 냄새보다 살이 썩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에 우리는 모두 연민의 정을 느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후속 부대에 맡기기로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생생하다. 전쟁의 산물! 인간으로서 가장 불행한 죽음과 아픔은 역사를 통하여 수없이 듣고 느끼고 하였건만 역시 인간이기에 또다시 이런 불행을 되풀이하는 오늘에 사는 우리가 아닌가. 인간은 이런 것인가!

우리는 이곳에서 홍천으로 가는 계획을 변경하고 양평으로 가게 되었다. 사단의 지시에 의하면 진격의 사각지대가 된 양평의 상황에 대응하고 그곳에서 일박 후 내일 다시 홍천 경유 춘천에서 본대와 합류하라는 것이다. 이 길은 동서로 연결된 길이어서 통행인이 전혀 없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차 위에 장치한 캬리바 50m/m의 위협 사격을 하면서 질주했다.     (다음 회에 계속...)


이전 14화 맏이 22. 북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