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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맏이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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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22. 2023

맏이 24. 양평에서


양평에서 

양평 가까이 왔을 때 이곳은 아직 국군의 반격 소식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민가도 부락도 아직 무인지경이다. 아마도 인민군의 주도권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 후 전방 도로상에 일단의 인민군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우리는 긴장하며 캬리바 기관총으로 달리면서 사격을 하니 인민군은 기겁을 하면서 논으로 뛰어들었다. 불시에 국군의 사격에 놀랐을 것이다. 

우리는 사기가 충천한 터에 누구의 명령도 없이 일제 사격을 했다. 인민군은 벼 익은 논에서 꼼짝도 안 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벼 이삭조차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이상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인민군이 혹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양평 시내를 먼저 수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양평 가까이 왔을 때 어떤 젊은 청년이 숨을 어깨로 쉬면서 우리 쪽으로 달려온다. 그 청년은 우리 차의 태극기와 인민군에 대한 일제 사격을 숨어서 보다가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뭔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자에게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다. 그 청년은 말하기를

“장교님, 저 집에…….”

하며 어떤 민가를 가리킨다.

“저 집에 악질이 있습니다. 인공 때 서울에서 내려와 우리를 못 살게 한 인민위원장이란 자가 숨어있으니 죽여주십시오.“

하며 애원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양평에는 30명가량의 인민군이 있을 것이라고도 하고 며칠 전만 하더라도 수백 명이나 있었는데 어느새 어디로 가버렸다고 한다. 이 청년도 아직 서울 수복을 모르고 있다가 우리 국군의 진격을 보고 안심한 듯 필요치 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 이 사이 선임하사와 괴산 출신의 경중사가 대원들을 데리고 청년이 말하는 그 집을 포위했다. 경중사가 소리쳤다. 이 집에 숨어있는 자는 즉각 나오라 했다.

조용하다. 다시 외쳤다. 세 번 외쳐도 대답이 없고 인기척도 없다. 경중사가 기관단총으로 위협 사격을 하니 방 안에서 한 젊은이와 할머니가 동시에 겁에 질린 얼굴로 마당에 나와 살려달라고 손을 비빈다. 그걸 본 우리에게 보고한 그 청년이

”저 놈이요 저 놈!“

한다. 이때 할머니는 같이 있던 젊은이를 감싸면서 땅에 뒹군다.

“제발, 살려주세요…….”

되풀이 되풀이 애원하며 우리 사위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연발한다. 나는 그 모습이 불쌍해서 ‘설마 이런 사람이’ 하고 주춤하고 있는데 아까 그 청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은 격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저자 때문에 죽은 사람이 많고 잡혀간 사람도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그 얼굴이 진지했다.

모든 상황를 판단이나 한 듯 선임하사가 그 할머니를 젊은이로부터 잡아당기니 할머니는 한사코 놓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동시에 경중사는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연발로 3발이 그 젊은이의 가슴을 뚫었다. 젊은이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그 자리에 늘어졌다. 할머니의 통곡하는 소리를 뒤에 두고 우리는 그 청년을 차에 태우고 양평으로 들어갔다. 우리 1개 중대가 읍내를 질주하면서 공포를 쏘아댔다. 

인민군의 대항은 없었다. 주민들은 우리의 진주에 놀라면서

“국군이 들어왔다, 국군이 들어왔다.”

하며 기뻐한다. 읍내는 금세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어떤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한참 동안 읍내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그때가 저녁 7시쯤 되었을까? 

이때 양평역에 묘한 일이 생겼다. 서울 쪽에서 기차 소리가 나면서 서서히 열차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일제히 역을 중심으로 몸을 숨겼다. 주민들은 갑작스런 분위기 변화에 놀라 집에 숨어들었다.

기차는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홈으로 들어왔다. 인민군 장교 복장을 한 자가 뛰어내리더니 심상치 않은 너무나 조용한 정거장 분위기에 의아해하면서 큰소리로 누굴 찾는다. 이미 상황을 짐작한 우리는 기차를 향하여 일제 사격을 가했다. 숨어있던 주민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길에 뛰쳐나왔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이 차는 서울이 수복되기 직전 지지부진 이곳까지 오는 사이 상황이 변한 것도 모르고 온 것이다. 우리는 이날 인민군 17명, 민간인 23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날 밤 우리는 주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다. 기차에는 주로 군복류와 식량, 어물(명태), 기름통들이 실려있었다. 전리품은 주민들에게 보관하도록 했다.

양평의 밤은 대낮과 같이 사람들이 오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낮에 만난 그 청년이 찾아오더니

“소대장님, 강가에 가보시지요.”

한다. 얼마 전에 이곳의 청년들을 잡아갔는데 그 사람들이 한 분도 보이지 않으며 누구의 말에 의하면 어젯밤 강가에서 많은 총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인민군 때문에 확인을 못 했다고 한다. 나는 즉각 소대원을 데리고 강가로 가보았다. 어두운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았으나 한 곳을 가보니 총에 맞은 시체가 이곳저곳에 뒹굴고 있다. 예감은 적중했다. 학살의 현장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양평읍의 슬픈 날로 기억되었다. 동네 전체가 눈물바다로 변했고 어제의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 우리는 다시 한번 전쟁의 불행을 실감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그 많은 눈물의 환송 속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우리의 전리품인 포로와 군수품을 보관할 수 있는 급조 자위대까지 편성하고 사후 처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굳센 결의까지 보이면서 만세를 부르고 불러 우리를 환송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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